양금덕 할머니가 8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의 인터뷰에서 서훈이 보류된 것에 대해 심경을 밝히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강점기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로, 30년째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재판 투쟁’을 해온 양금덕 할머니의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이 돌연 보류된 것에 대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단체들이 일제히 “경천동지할 일”이라며 반발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무엇 때문에 상을 안 준다고 했는지 상의 한 마디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8일 규탄 성명서를 내어 “일본 비위 상하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인권상’ 하나도 주지 못하나”라고 비판했다. 강제동원 관련 한-일 협의에 변수가 생길 것을 우려해, 9일로 예정된 ‘세계 인권의 날’(12월10일) 기념식에서 양 할머니에게 서훈을 수여하려다가 보류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외교부가 앞장서서 (서훈을) 추천해도 부족할 판에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며 30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고,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고군분투해 온 한 많은 일제 피해자에 대해 일본도 아닌 우리 정부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철저하게 짓밟을 수 있나”라며 “지난 9월 박진 장관(외교부)을 만나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온 양 할머니의 바람이 일본에 거슬리기라도 했던 것인가. 이것이 저자세 외교, 굴욕외교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인권상 수상에 도대체 어떤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냐”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 성명을 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굴욕외교가 점입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윤석열 정부는 대위변제, 병존적 채무 인수 등 졸속적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해 한·일관계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외교부는 7월26일 대법원에 사실상 일본기업의 자산 매각을 보류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해 판결 이행을 멈추게 하더니, 이번에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상 수상을 이례적으로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 쪽은 일본 눈치를 보느라 서훈에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상훈법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하고 대통령 재가를 해야 하는 절차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의견을 제시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상훈법은 상훈법은 서훈이 추천된 경우 행정안전부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양 할머니 서훈 건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고 8일 열리는 임시국무회의에도 오르지 않았다.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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