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누산리에서 50여년째 논농사를 짓는 김원기(75)씨가 벼 베기를 마친 뒤 들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올해도 닷섬 농사는 되겄는디….”
19일 오전 전남 영암군 월출산 자락 무내미들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던 영암쌀생산자협의회 사무국장 김봉식(47)씨가 말끝을 흐렸다. 그가 말한 ‘닷섬 농사’는 대풍(大豐)을 뜻하는 남도 농사말이다. 200평 논 한 마지기(661㎡)를 기준으로 석섬(1섬은 160㎏)을 수확하면 보통, 넉섬은 풍년, 닷섬은 대풍년인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풍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같은 날 영산강 인근 나주시 세지면 송촌마을에서 만난 나주농민회 사무국장 김재영(50)씨는 “낟알 수나 벼 길이, 처진 정도를 보면 올해도 넉섬 반 농사는 거뜬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대풍의 예감 앞에서도 농부들의 표정은 마냥 밝지 않았다.
벼 수확을 앞둔 농가에 시름이 쌓여가고 있다. 쌀값 때문이다. 올해 쌀값은 정부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7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의 ‘산지쌀값조사’(정곡 20㎏, 매달 15일 기준)를 보면 2019년 9월 4만6834원이었던 쌀값은 2020년 9월 4만8143원, 2021년 9월 5만4228원으로 가파르게 올랐다가 올해 9월 4만725원까지 내려갔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해 10월5일(5만6803원)에 견줘 28.3%가 떨어진 것이다.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2월과 5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37만t을 비축미로 사들였지만, 늘어난 수확량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는 쌀값 폭락 원인으로 생산 과잉과 소비 부진을 꼽는다. 하지만 농민들 생각은 다르다. 정부의 소극 대응과 정책 실패 탓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벼 생산량은 2018년 386만8045t, 2019년 374만4450t, 2020년 350만6578t, 2021년 388만1601t이었다. 2020년은 태풍으로 작황이 부진했지만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쌀 생산면적은 2018년 73만7673㏊에서 2019년 72만9814㏊, 2020년 72만6432㏊까지 줄었다가 2021년 73만2477㏊로 다시 늘었다. 올해는 72만7158㏊다. 그사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8년 61㎏에서 56.9㎏으로 줄었다.
2021년 쌀 재배면적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전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 유장수(52)씨는 정부의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 중단’을 꼽았다. 정부가 쌀 수급량을 조절하기 위해 2018년부터 논에 콩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2020년에 이를 중단하자 지원금을 받으려고 논을 늘린 농민들이 새 논에 일손이 덜 드는 벼를 심으면서 생산량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19일 김재영 나주농민회 사무국장이 전남 나주평야의 올해 작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쌀값 폭락은 농민들의 가계 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김봉식씨가 밝힌 소득 내역을 보면, 논 한 마지기에서 나오는 수입(넉섬 기준)은 지난해 69만3천원에서 49만5천원으로 줄었고 비료·인건비 등 영농비용은 48만4500원에서 53만9250원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논 한 마지기에서 20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면 올해는 4만4천원을 손해 보는 셈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올해 1~8월 밥쌀용 쌀 1만7297t을 수입해 시장에 방출한 것도 논란을 자초했다. 국회가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과잉 생산분의 매입을 의무화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은 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유장수씨는 “재배기술 향상을 전제로 생산량 증대에 대비해야 한다. 친환경 벼 생산 지원, 가공산업 육성 등 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5일 전농 광주전남연맹, 전여농 광주전남연합, (사)전국쌀생산자협회 광주전남본부 소속 농민들이 전남 무안군 전남도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쌀값 안정화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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