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화재 옥계면 가보니 불 시작된 주택 주변은 폐허 불길 5일 동해까지 번져 남양리 주민 토치로 방화
5일 오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만난 윤옥순(79)씨가 앞산에 난 산불을 바라보며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는 마스크라도 쓰지…바로 집 앞에서 시뻘건 불덩이가 펄쩍펄쩍 날아다녀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코로나보다 훨씬 더 무섭지.”
5일 오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 만난 윤옥순(79)씨는 자신의 집 주위를 돌며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윤씨의 집 주변을 둘러보자 불과 30여m 떨어진 앞산이 시뻘건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고,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연 연기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윤씨가 사는 남양리에선 이날 새벽 1시20분께 한 주택에서 난 불이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산불이 났다. 산림당국은 초기 진화에 나섰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산불이 주변으로 빠르게 번졌고, 이날 새벽 5시30분께는 인접 지자체인 동해시 망상동까지 확산했다.
3년 전인 2019년 4월에도 윤씨가 사는 남양리에서 산불이 났다. 당시에도 남양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속 12m 강풍을 타고 동해시로 번지면서 산림 1260㏊와 주택 등을 태워 610억원 상당의 피해를 냈다. 3년 만에 발화 시점과 경로가 똑같은 산불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윤씨는 “3년 전에도 불이 바로 집 앞까지 번져 가까스로 몸만 피했다. 이번에도 불길이 동해로 넘어간다는데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큰 피해 없이 불길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일 새벽 1시20분께 한 주택에서 난 불이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면서 산불이 났다. 최초 발화 지점인 주택의 모습.
산불이 시작된 남양리 주택 인근으로 다가가자 피해가 더 심각했다. 불이 시작된 주택은 콘크리트 뼈대만 남은 채 완전히 폐허가 됐다. 건물은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내려앉았고, 세간살이는 깨지고 까맣게 불에 타 처참했다. 주택과 맞닿은 도로 옆 산림은 아직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불을 진화 중인 한 직원은 “물을 뿌리고 또 뿌려도 조금만 있으면 또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을 타고 불길이 또 번진다. 새벽부터 불을 끄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언제 불길을 다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남양리 경로당에서 만난 함광식(58)씨도 3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함씨는 “잠을 자고 있다가 이상해 눈을 떴는데 산불이 집까지 옮겨붙었다. 현관문으로 나올 수도 없어서 작은 창문을 열고 나오다 옷에 불이 옮겨붙어 허리와 다리, 얼굴 등에 화상을 입었다. 5분만 늦었어도 죽었다. 지금도 불만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날 옥계에서 시작한 산불은 오후 3시 현재 산림 500㏊를 태운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축구장 면적(0.714㏊)으로 따지면 700배 규모다. 강릉에서는 옥계뿐 아니라 성산면 송암리 영동고속도로 인근 야산에서도 지난 4일 오후 10시20분께 산불이 발생해 산림 20㏊를 태웠다.
한편, 옥계 산불은 남양리에 사는 ㄱ(60)씨가 주민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등의 이유로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날 새벽 1시7분께 “ㄱ씨가 토치 등으로 불을 내고 있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ㄱ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또 ㄱ씨에게 토치 등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