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고 이지한씨 아버지)가 12일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 출범식에서 발언하다 분노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대전대책회의) 출범식이 열린 12일 오후 2시, 대전시청 북문 앞 하늘은 눈이 내릴 듯 흐렸고 북풍 찬바람에 몸이 얼었다. 행사에 참석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추위 대신 분노에 떨었다.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손을 심하게 떨었다. 두 손을 마주 잡아도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옆에 있던 진창희(한 희생자의 고모)씨가 마이크를 잡아 주었다. 조씨는 “지한이는 그날 밤 10시30분에 거기에 갔다가 11시에 도로에 누워 있었다. 158명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정부·공무원은 위험을 방지해야 하는데 이를 못했다면 결과에 따라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지한아, 엄마는 싸울 것”이라고 부르짖었다.
“우리 애는 스물한살, 병원에서 이틀을 버티다 11월1일 세상을 떠난 156번째 희생자입니다. 피가 필요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또래 수백명이 수혈을 했는데…의료진은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진창희씨의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왜 스물한 살짜리 애들이 친구의 죽음으로 상처받아야 하고 의료진이 사과해야 하느냐. 정작 책임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진정어린 사과 한마디 없고 정진석·권성동 등 여당 의원들은 유족들에게 위로는커녕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미선씨는 “우리 애는 생일이 11월1일인데 그날 떠났다. 대통령은 국민의 부모라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부모가 돼서 영정도 없는 자식 분향소를 찾느냐. 단 한 번의 사과와 위로도 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유가족들은 “수사도 답답하다. 현장 대응을 떠나 예방 단계까지 범위를 확대하길 바랐으나 정부와 검경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400여명의 유실물을 대상으로 마약검사를 해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욕했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특검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전권 46개 시민사회·종교단체·정당 등이 참여한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가 12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유가족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이태원 참사 49일(12월16일)을 나흘 앞둔 이날 대전권 46개 시민사회·종교단체와 정당 등은 10·29 이태원 참사 대전대책회의를 꾸렸다. 대전대책회의는 희생자와 가족·국민을 위로하고, 국가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한 대책기구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지역에서 대책기구가 꾸려지기는 처음이다.
대전대책회의는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한 인재’라고 규정했다. 또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사고를 수습한 현장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돌려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유가족협의회 출범에 정치적 색깔을 입혀 2차 가해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여당은 이상민 장관 해임안 국회 본회의 통과에 반발해 국정조사위원이 전원 사퇴하며 진상 조사를 방해하고 책임자들을 비호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국가 책임을 인정해 즉시 공식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는 이상민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희근 경찰청장을 파면해 성역없는 진상 규명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전대책회의는 이날부터 참사가 발생한 지 49일이 되는 16일까지를 집중추모 기간으로 정해 대전 곳곳에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게시하고 15일 저녁 7시 둔산동 타임월드 맞은편 국민은행 앞에서 추모촛불 집회를 연다. 또 유가족과 협의해 대전시청 동문이나 추모촛불 집회 장소 주변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고 유가족 지원 사업도 계속할 예정이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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