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만에 자리 뜨자 유가족들 “생사람이 죽었어. 뭐라도 말을 해야지…”
이천시 부시장 “우리도 예상 못해”…시공사 관계자가 유가족들에 해명중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시공사 대표가 30일 오후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38명 사망자를 낸 이천 물류센터 시공사 대표 이아무개씨가 30일 오후 2시 물류창고 건너편에 있는 이천시 모가체육관 단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공사 대표가 나서 사고 경위와 대책을 설명할 것이라는 예고에, 점심도 거른 채 기다렸던 유가족 수십여명은 차분한 모습으로 이 대표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화재 발생 하루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시공사 대표 이씨는 1분여를 단상에 엎드린 채 잘못했다는 말만 반복하다 회사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곧바로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황당한 표정의 유가족들은 이씨를 쫓아가며 울부짖었다. “유가족이 밥도 못 먹고 3시간을 기다렸는데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가야지…”, “도망갈 생각 말고 말을 하고 가야지…”, “우리 아들이 왜 죽었는지 말이라도 하고 가…”
체육관을 나선 이 대표는 멀리 가지 못한 채 체육관 바로 옆 잔디밭에 쓰러졌다. 회사 직원들이 나서서 경찰에게 “경찰 뭐해요? 도와줘요”라고 소리쳤다.
유가족들이 이 대표와 직원들을 에워싼 채 “가족들 심정이 어떤지 생각해봤어요”, “생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러면 뭐라도 이야기를 해주어야지”라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화가 난 유가족들이 권금섭 이천시 부시장에게 항의했다. 사고 수습을 맡은 이천시는 이날 오후 1시30분께 체육관에서 장내 마이크를 통해 “시공사 대표가 직접 와서 여러분께 사고 경위와 대책을 설명할 것이다”고 안내를 한 바 있다. 권 부시장은 “우리도 예상을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상태가 나아지면 다시 유가족들과 대화를 하도록 하겠다”며 유족들을 달랬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어제부터 이천시의 기다려라, 기다리라고 하는 말만 믿고 기다렸는데 왜 자꾸 회사만 편드냐”고 항의했다.
시공사 이 대표는 18분여 만에 119구급차에 실려 현장을 빠져나갔다. 시공사 쪽은 이날 이천시의 요청으로 이 대표가 아닌 다른 관계자가 언론사 기자들을 체육관에서 내보내고 유가족들만 불러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유가족은 “내 자식이 어찌 죽었는지라도 알고 싶어”라며 힘없이 체육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천/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관련해 시공사 대표가 30일 오후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현장을 빠져 나가다 유가족들의 격렬한 항의 속에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