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6시50분쯤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사찰인 칠장사 내부 요사채에서 불이나 자승 스님이 숨졌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조계종 전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까지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해온 그가 돌연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조계종단 내부에서 확산되는 가운데, 경찰도 사건 이튿날 현장감식에 나서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일단 불이 비교적 이른 시간대에 났음에도, 사망자가 자력으로 대피하지 못한 점,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3월23일 조계사에서 열린 상월결사 인도순례 회향식에서 회향사하는 자승 스님. 연합뉴스
경찰은 일단 사망자의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주검을 보내 디엔에이(DNA) 대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후 경찰은 칠장사 요사에서 일어난 불이 방화인지, 실화인지부터 밝히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현장감식을 통해 최초 발화지점과 불길이 번진 형태, 잔여물 분석을 통해 쉽게 가려질 전망이다. 경찰은 30일 오전 11시부터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실화가 아닌 방화가 맞는다면 불을 지른 것이 누군지가 밝혀져야 한다. 숨진 자승 스님이 스스로 건물에 불을 질렀는지, 누군가 살해할 목적으로 불을 놓았는지, 자승 스님이 누군가에게 부탁해 불을 놓은 건지를 규명하는 게 핵심이다. 타살이 아니라 스스로 극단 선택을 한 것이라면 조력자들은 누구이며, 왜 도왔는지를 밝혀야 한다. 여기엔 목격자 진술 확보와 사찰과 주변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분석이 필수다.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전날 오후 3시10분쯤 차량을 몰고 칠장사를 찾은 자승 스님이 1시간쯤 뒤 플라스틱통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요사(승려가 머무는 곳)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30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칠장사 요사채 화재 현장 출입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이 화재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이 입적했다. 안성/연합뉴스
유서라고 보도된 메모의 작성 경위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필적 감정을 통해 자승 스님이 쓴 메모가 맞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 부분은 종단이나 사찰이 보유 중인 사망자의 필체와 메모의 필체를 국과수 분석팀에서 비교 감정하면 쉽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화재 현장 인근 차량에서 발견한 2쪽 분량의 메모에는 “검시할 필요 없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다 녹화돼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부탁한다”는 내용과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다. 이 건물은 상자들이 복원할 겁이다.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사인 분석은 국과수 부검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화재로 인한 주검의 손상 정도가 크다는 게 변수다. 주검에 외상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화재로 인한 사망에서 흔히 발견되는 호흡기 손상 여부, 혈액 분석 등이 뒤따라야 한다.
감식반은 정확한 화재 원인 파악을 위해 잔해를 수거하는 등 활동을 벌인다. 인화성 물질 여부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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