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조현기씨가 경매 중단을 요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조현기씨 제공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조현기씨의 목소리엔 수심이 가득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매물의 경매 중지를 요청한 날,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으니 남은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건축업자 남아무개(61)씨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조씨의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아파트는 19일 인천지법 219호 입찰 법정에서 낙찰됐다. 첫 경매에서 유찰된 조씨 아파트의 이날 낙찰가는 애초 집값의 70% 수준인 1억430만원이었다. 조씨는 2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경매 두 번만에 낙찰될 줄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조씨의 집 계약 기간은 올 10월까지지만, 이번 경매 낙찰로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 한다. 낙찰자가 1개월 안에 잔금을 내고 등기를 이전하면 조씨가 남씨와 맺은 전세계약은 효력을 잃는다. 조씨는 전세보증금 6200만원 중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최우선변제금 2200만원만 받게 된다.
조씨는 이날 통화에서 “정부 대책에는 여전히 많은 구멍이 있다”고 했다. 실제 조씨의 아파트는 정부의 경매 유예 요청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부는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대출분에 대해 경매 유예를 요청했지만, 조씨 아파트의 채권은 은행도 상호금융권도 아닌 대부업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씨 아파트의 채권을 가지고 있던 신용금고가 지난달 한 대부업체에 이를 팔아버린 것이다. 조씨는 “대부업체가 정부의 협조요청을 받아들일 리가 있겠나. 정부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여기저기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전세사기피해전국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많은 채권이 대부업체로 넘어갔고 앞으로 계속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이 채권을 대부업체로 파는 행위도 중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에 대한 정부의 경매 중단 요청이 있었지만 인천지방법원에는 20일에도 전세사기 물건에 대한 경매가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인천지법 앞에는 경매 대상 29개 물건의 매각기일공고가 붙었다. 이 안에는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도 일부 포함됐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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