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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1번지라고요? 주민들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요”

등록 2022-02-28 04:59수정 2022-03-01 17:50

3·9 재보선 현장을 가다ㅣ서울 종로

최재형·김영종·배복주…10명 출사표
“정권교체·재창출 거시적인 얘기뿐
민생 어떻게 살릴지 공약은 없어”
유권자, 대선과 겹친 재보선 시큰둥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금천교시장에서 지난 1983년부터 효자국수를 운영하는 안재훈씨를 만났다. 김양진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직동 금천교시장에서 지난 1983년부터 효자국수를 운영하는 안재훈씨를 만났다. 김양진 기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다음달 9일 서울 종로·서초갑, 경기 안성, 충북 청주상당, 대구 남서에서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함께 치러진다. 대선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재보궐선거 현장을 차례대로 찾아 민심을 들어봤다.

“정치 1번지 종로라고요? 주민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 금천교시장에서 만난 안재훈(64)씨의 말이다. 1983년 가업인 ‘효자국수’를 물려받아 40년째 운영 중인 종로토박이인 안씨는 “대선과 겹쳐서 그런지, 선거운동하는 모습도 잘 안보인다”며 “종로는 거물들을 전략공천한다는데, 의원 배지 달고 나면 자기 야망을 좇아 떠날 사람들이지 종로를 위해 일할 사람들이 아닐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한겨레>가 만난 금천교시장 다른 상인들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관련한 질문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명확하게 어느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지역관련 큰 쟁점이나 이슈가 없어 깜깜이 선거가 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38년째 시장을 지키고 있다는 곽종수(66·오성떡방아간 대표)씨도 “정권교체니 정권재창출이니 거시적인 얘기만 있고, 코로나로 힘든 우리 같은 시장상인들이 어떻게 잘 살아가게 할지 해법을 제시하는 후보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흥식(76·그린청과 대표)씨도 “대선하고 같이 해서인지 이슈가 없는 것 같다. 민생을 어떻게 살릴지, 그런 공약이 잘 안 보인다. 누가되든 네거티브 좀 그만하고 정치 좀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 도로에 대통령 후보와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의 펼침막이 구분없이 붙어있다. 김양진 기자
지난 25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 도로에 대통령 후보와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의 펼침막이 구분없이 붙어있다. 김양진 기자

최재형·김영종·배복주 3파전 될 듯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사퇴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 종로는 인구 14만4543명(올 1월 말 기준)으로 서울에서 중구 다음으로 인구가 적지만, 청와대와 광화문 등을 끼고 있는 상징성 때문에 흔히 ‘정치 1번지’로 불린다. 실제 윤보선·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등이 종로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번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는 모두 10명이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던 최재형(65)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공천을 따냈으며, 민주당 무공천 방침에 탈당한 김영종(68) 전 종로구청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정의당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출신인 배복주(50) 전 당 부대표를 공천했다. 이밖에 김도연(41·시대전환), 구본철(63·국민혁명당), 김두환(75 독도한국당), 송문희(54·새로운물결), 윤대관(53·통일한국당), 서주원(55·무소속), 박종구(72·무소속)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유권자들은 시큰둥하지만, 각 선거캠프는 코로나19 확산 등 어려움에도 각자 방식대로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재형(65·국민의힘), 배복주(50·정의당), 구본철(63·국민혁명당), 김도연(41·시대전환) 후보. 선관위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최재형(65·국민의힘), 배복주(50·정의당), 구본철(63·국민혁명당), 김도연(41·시대전환) 후보. 선관위 제공

최재형 “김영종 구청장 10년, 인구만 줄어”

최재형 후보는 중앙당 지원을 받은 대규모 유세와 골목길 인사를 병행하고 있다. 최 후보는 지난 23일 오후 4시 광장시장 앞에서 홍준표 의원과 공동 유세에 나섰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인지 모여드는 이는 별로 없었다.

홍 의원은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종로 국회의원이 된다. 저희 당에서 이회창 감사원장 이래 가장 결단력 있는 최 전 감사원장을 종로의 인물로 천거했다. 종로의 자존심을 지켜줄 인물을 뽑는 선거를 해 달라”고 덕담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최 후보는 “김영종 구청장이 지난 10년간 구청장을 하면서 종로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시민들 목소리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인구가 줄어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런 목소리를 부응하고자 출마하게 됐다”며 민주당 출신인 김영종 후보 견제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 주요 출마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배복주, 시민사회·노동단체 연대에 집중

세 후보 가운데 인지도면에서 달리는 배복주 후보는 대규모 유세, 주민 인사와 함께 시민사회 연대에도 집중했다.

지난 24일 오후 2시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지부, 기후위기대응서울모임, 청년유니온, 평화어머니회 등 서울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이 배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지 발언을 한 종로주민 홍명교(플랫폼C 활동가)씨는 “그간 종로는 기득권 양당의 나쁜 정치에 희생됐다. 배복주 후보가 당선되면 종로가 소수자·장애인·여성·청년이 민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정치 1번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종 “내가 종로 제일 잘 알아”

종로 사정을 가장 잘 아는 후보로 꼽히는 김영종 후보는 ‘조용한 유세’ 전략을 펴고 있다. 미리 예고한 뒤 벌이는 대규모 유세를 아예 생략하고, 골목길 인사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 8시 청운효자동 박노수미술관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인사를 하던 김 후보는 “구청장 했던 김영종입니다. 종로를 위해 일하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는 “종로는 아파트 단지는 적고 유동인구는 많아 대규모 유세가 효과가 없다고 보고 안 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상황에 따라 주민들이 계신 곳을 정해 찾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두환(75·독도한국당), 송문희(54·새로운물결), 윤대관(53·통일한국당), 김영종(68·무소속), 박종구(72·무소속), 서주원(55·무소속) 후보. 선관위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두환(75·독도한국당), 송문희(54·새로운물결), 윤대관(53·통일한국당), 김영종(68·무소속), 박종구(72·무소속), 서주원(55·무소속) 후보. 선관위 제공

세 후보 가운데 어디로 민심이 향하는지는 미지수다. 관련 여론조사조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1일과 3일 오후에는 최재형·배복주·김영종 후보의 텔레비전(TV) 토론이 케이블방송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에서 방송(지난 26일 녹화)될 예정이지만, 시청률 등을 고려할 때 여론형성에 도움이 장담하기 힘들다.

누상동 주민 강인숙(47)씨는 “대선과 겹쳐서 국회의원 뽑는 건 뒷전이 된 것 같은”며 “구청장을 했던 분은 ‘국회의원은 처음인데 국회의원 위상에 맞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고, 제1야당 후보는 ‘종로구를 대변하긴 할까’ 고민되고, 그렇다고 제3의 후보를 뽑자고 하니 ‘(내 표가) 의미 없는 표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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