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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가로수 독살사건’ 미제로…검사님은 ‘근사미’를 아십니까

등록 2022-02-13 14:27수정 2022-02-13 15:18

지난달 25일 서울 응암로 스타벅스 예비 매장. 이 스타벅스 매장은 오는 28일 문을 연다. 지난해 7월 이 매장 앞 가로수 세그루가 농약을 주입한 흔적을 남긴 채 말라 죽어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사진에 보이는 플라타너스 두그루는 당시 고사한 것들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지난달 25일 서울 응암로 스타벅스 예비 매장. 이 스타벅스 매장은 오는 28일 문을 연다. 지난해 7월 이 매장 앞 가로수 세그루가 농약을 주입한 흔적을 남긴 채 말라 죽어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사진에 보이는 플라타너스 두그루는 당시 고사한 것들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나무줄기에 직접 주입에 의한 것인지 또는 뿌리 등을 통한 흡수에 의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서울서부지검 형사2부(부장 김승언)가 서울 서대문구 스타벅스 북가좌드라이브스루(DT)점 앞 ‘가로수 독살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건물관리인을 무혐의 처분하며 내놓은 2쪽 분량 ‘불기소 결정문’의 일부분이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해 여름 이 건물에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서게 되면서 차량 진출입로 확보를 위해 구청 허가를 받아 건물 앞 플라타너스 가로수 두그루에 제초제 ‘근사미’를 주입한 뒤 베어냈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옆에 있던 가로수 세그루도 말라죽어가기 시작했다. 서대문구청이 조사에 나섰고 베어낸 두그루에 주입했던 근사미 성분이 옆 세그루 나무에서도 기준치 700배 이상 검출됐다. 구청 의뢰로 수사를 진행한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건물관리인을 범인으로 결론내렸다. 건물관리인도 서대문구청을 통해 자수서를 제출하고, 가로수 세그루값 780만원을 변상했다. 김종철 서대문구청 푸른도시과장은 “보통은 나무를 톱으로 베는데, 제초제를 써서 죽이는 건 처음 본다. 너무 잔인한 방식이라 놀랐다”고 했다.

경찰은 이런 수사 결과를 검찰에 송치했는데, 검찰은 지난달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고의로 나무줄기에 주입한 게 아니라, 실수로 뿌리를 통해 제초제 성분이 흘러갔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검찰은 일부 언론에 “제초제가 하수관이나 토양 등을 통해 주변 나무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과연 검찰이 언급한대로 뿌리 등을 통해 흡수됐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팜한농이 만든 ‘근사미’는 글리포세이트(Glyphosate)가 주성분이다. 미국 몬샌토사가 1974년 출시한 글리포세이트는 반드시 즐기나 잎에 뿌려야 하는 ‘경엽처리형 제초제’다. 글리포세이드를 흙에 뿌리면? 제초 효과 사라진다. 경북대학교출판부가 낸 <최신 잡초방제학 원론>(2021년)에서는 글리포세이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처리 6시간 후 식물체의 경엽을 통해 흡수돼 체관부를 통해 서서히 이행된다. 일년생은 4∼10일, 다년생은 15∼30일 황화·고사된다. (중략) 토양 중에서는 살포 후 곧 불활성화되므로 토양처리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185~186쪽)

㈜팜한농 누리집에 올라온 ‘근사미’에 대한 설명도 이렇다. “땅에 떨어진 유효성분은 토양에 강하게 흡착되어 근사미 살포 후 작물을 심어도 생육에 문제가 없습니다.” 검찰 설명과 달리 뿌리(토양)를 통한 제초제 성분의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검찰은 불기소로 판단하면서, 전문기관인 국립산림과학원의 자문을 받았다고도 설명한다. 산림과학원에 문의해 검찰에 의견을 냈다는 연구사와 통화해봤다.

“검찰에서 하수구를 타고 제초제가 이동했을 가능성을 물어와서 ‘그럴 가능성은 작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토양이동에 관해선 묻지 않았다. 그리고 저희는 (농약 가운데서도) 살균제 전문이라 '정확한 내용은 제초제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안내했다.”

앞서 건물관리인의 고용주인 건물주 박아무개씨는 지난 8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허가받은 두그루에 제초제를 주입했던 날 비가 많이 내렸다. 제초제가 씻겨서 하수관을 타고 다른 나무들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건물관리인도 경찰·검찰 수사에서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이 설명이 사실이라면, (근사미 성분이 토양에서는 불활성화되기에) 제초제는 나무뿌리에 직접 닿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노출 가로수 뿌리들이 하수관을 관통해 지나가기라도 하는 걸까? 또 빗물에 섞여 희석된 근사미가 흘러가면서 접촉한 것만으로 나무에 기준치 700배 이상 제초제 흡수될 수 있을까? 여러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그럴 가능성이 작다’는 회신 내용을 ‘가능성이 있다’로 둔갑시켰다. 심지어 자신들은 전문가가 아니라는데, 검찰은 이 의견조회 결과를 무혐의 처분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검찰 설명은 이렇다. 박현준 서울서부지검 인권감독관은 “검사 입장에서 방점은 다른 간접증거로 추단되는 증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허가받은 두그루와 나머지 세그루에서 검출된 (제초제 성분) 양이 70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이런 확연한 차이로 볼 때 피의자로 지목된 분이 고의로 나머지 세그루에 (제초제를) 주입했다고 90% 이상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상 단정하기 어려우면 기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이런 설명에, 자수사와 함께 변상금까지 받은 서대문구청 쪽은 검찰 결정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종철 과장은 “(검찰 설명은) 농도가 달라서 의도도 다르다는 말 같은데, 허가받지 않은 세그루에 주입된 근사미만 해도 기준치의 700배가 넘는다. 고의가 아니라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글리포세이트는 토양(흙)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지만, 동·식물의 몸에 닿는 것만으로 위험한 맹독성 제초제다. 물에도 섞인다. 무지개송어를 대상으로 실험하니 86피피엠(PPM, 100만분의 86g)만으로도 절반 이상이 48시간 안에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로수에서 검출된 근사미 성분은 기준치의 700배~1만8천배 수준이었다고 한다.

‘가로수 독살 사건’은 이렇게 미제로 남게 되는 걸까. 김 과장은 “검찰 결정문을 받아보는 대로 이의제기를 할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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