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2017년 대선 기간에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기우 자치분권국민회의 상임대표와 지방분권개헌 국민협약서를 교환한 뒤 선물로 받은 글귀를 함께 든 채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지방분권 정책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약속한 만큼, 정부는 자치분권 강화를 위해 국정과제와 로드맵을 마련하고 자치분권 종합계획 등을 추진했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지난해 좌절된 뒤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중앙정부의 571개 사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로 넘겼다. 물론 이런 지방분권 정책들이 아직 국회 문턱을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에서는 지방분권 정책이 좀 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국가균형발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균형발전 없이 이뤄진 지방분권은 지역 양극화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갈수록 커지는 지방재정 불균형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재정 불균형 해소는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다. 서울과 수도권 등 일부 지역 외에는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지방정부 살림을 이어갈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10월 정부가 발표한 ‘재정분권 추진 방안’을 보면, 재정자립도가 30% 미만인 지방정부는 수도권 69곳 가운데 27.5%(19곳)에 불과했지만, 비수도권은 전체 174곳 가운데 72.4%(126곳)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안전부의 자료를 봐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2017년 53.7%에서 지난해 53.4%, 올해 51.4%로 해마다 감소 추세다. 재정자립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지방세 등 세입 비중이 줄어 정부에 대한 재원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분권의 척도인 ‘재정자주도’도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재정자주도는 지방정부의 일반회계 세입 중에서 자체 수입과 자주 재원을 합한 것을 지방정부 예산 규모로 나눈 값의 비율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 많다는 뜻이고, 낮을수록 지방정부가 재량껏 집행할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이다. 전국 평균 재정자주도는 2003년 84.9%에서 지난해 75.3%로 15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줄어들었다. 재정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 서울도 2003년 95.9%에서 지난해 85.5%로 축소됐다. 전남은 73.6%에서 67.8%, 광주는 78.1%에서 68.8%로 60%대로 주저앉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와 전국자치분권개헌 추진본부 회원들이 2018년 초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지방분권 개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실패한 ‘지방분권형 개헌’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혁신적인 지방분권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10월 ‘자치분권 5년 로드맵(안)’을 발표하고, 이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헌법 제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선언적으로 명시하며, 대통령과 시·도지사 사이 ‘제2국무회의’ 성격의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자치입법권과 지방정부 사무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개헌안은 지난해 3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당의 불참으로 재적 의원 288명 가운데 114명만 참석해 의결정족수 미달로 개헌안은 자동폐기(투표불성립)됐다.
■ 30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지방분권 개헌이 무산됐지만, 정부는 현행 헌법 안에서 추진할 수 있는 지방분권을 곧바로 추진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0월 주민참여제도와 자치단체의 자율성을 강화해 자치분권을 실현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발표했다. 해방 이후인 1949년 처음 제정돼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1988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된 지 30년 만이다.
전부개정안에는 주민이 지방정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지방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제’ 등 직접민주주의적 요소가 도입됐다. 각 시·도에 기존 부시장·부지사 등 부단체장 외에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부단체장 1명을 자율적으로 더 둘 수 있도록 했다.
개헌이 좌초된 상황에서 나온 법 개정안이다 보니 학계와 지방정부·의회에서 요구해온 자치입법권, 제2국무회의 등이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까지 지방소비세율을 6 대 4로 조정하기로 한 데서 후퇴한 7 대 3의 재정분권안을 내놓아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방분권개헌충북회의가 2018년 3월 충북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는 지방분권 개헌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며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방분권 효과 보려면 균형발전부터” 문제는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이 균형발전에 대한 고민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하면 가난한 지방정부는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자신의 책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에서 “지방분권은 현재 진행 중인 지방의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다. 지방을 위험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지방분권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방분권이 균형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그는 책을 통해 지적한 것이다. 마 교수는 “‘중앙정부가 권한을 이양하는 것’과 ‘어려운 지자체를 도와주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행위”라며 “지방이 이양받는 권한이 크면 클수록 중앙정부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힘이 없어진 중앙정부는 지자체 간의 격차를 보정할 능력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지방분권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역간 격차를 어느 정도 보정한 상태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균형발전 단위가 기초자치단체가 아닌 광역자치단체가 돼야 한다. 광역 단위가 자치권을 갖고 내부 기초자치단체들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조정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재정조정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재정력이 취약한 지방정부도 재정 부족분을 보전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로, 연방제 국가인 독일에서 도입하고 있다. 독일은 올해까지 한시적이지만, 연방재정조정기준법 등에 근거해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 전체 조세수입의 약 72.1%를 공동세로 걷고 있다. 이렇게 걷은 세금을 해마다 경제 상황과 주정부, 지방정부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조정해 배분한다. 독일은 내년부터 적용할 새로운 재정조정제도 도입을 논의 중이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수도권의 세입이 전국의 60%에 달하는데 ‘재정분권’이라는 미명하에 각자 번 돈을 각자 쓰게 하면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지역은 점점 더 낙후하고, 재정이 좋은 지역은 더욱 발전할 수밖에 없다”며 “재정 격차가 심해지면 수평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지원하는 이 제도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꾀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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