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수도권에서 7만명이 넘는 인구가 지역으로 옮겨갈 뿐 아니라 지방에 30년 동안 5조원의 생산 증가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까지 이뤄진다면, 인구·경제효과를 넘어선 지역균형발전의 한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러나 세종시 출범 7년이 다 되도록 국회 분원(제2국회)과 청와대 2집무실(제2청와대) 논의는 걸음마 수준이다. 국회 이전에 대해서만 2차 연구 용역이 진행 중이고 청와대 2집무실 논의는 시작도 되지 못했다.
<한겨레>가 단독 입수한 국회 사무처의 ‘국회 분원 설치의 타당성 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정치, 사회, 행정, 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분석하고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에선 국회를 세종으로 완전히 이전하면 국회 공무원 5천여명이 세종으로 이동하며, 이 영향으로 수도권 인구 약 7만2천명이 지방으로 이동할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가 이전하는 충청권엔 5만3천여명, 영호남권엔 1만1천명의 인구 증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보고서는 2017년 국회사무처가 발주하고 한국행정연구원이 수행해 같은 해 12월 결과가 나온 것으로 그동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고용과 지역내총생산(GRDP) 등 경제 효과도 나타났다. 수도권에선 1만5천여명의 고용이 줄어든 대신 충청권에서는 1만2천명, 영호남권에서 1840명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지역내총생산은 수도권에서 1년에 3794억원 줄어들지만 충청권은 3271억원, 영호남권은 676억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충청 등 지방의 30년 동안 지역내총생산 증가 효과는 5조78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국회뿐만 아니라 청와대까지 세종으로 옮기면 더 큰 균형발전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되지만, 청와대가 세종으로 이전할 때의 인구 분산과 경제 효과를 예측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다. 청와대 직원은 1500여명으로 국회 직원 5천여명보다 적지만 행정부처, 국회와의 업무 연관성이나 상징성이 커서 국회 못지않은 균형발전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두 기관의 세종 이전에 대한 시민의 여론도 찬성 의견이 대체로 높게 나타난다. 2017년 7월 국회도서관과 한국리서치가 전문가와 전국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헌법에 수도 규정 신설을 통한 청와대·국회 세종시 이전 근거 마련’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민은 49.9%가 찬성, 44.8%가 반대했다. 전문가는 일반 국민보다 찬성 비율이 15%포인트 높아서 64.9%가 찬성, 35.1%가 반대했다. 또 2017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국회·청와대 세종시 이전 공감도’ 여론조사에서도 53.8%가 찬성, 37.7%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 여론이 대체로 부정적이었던 것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넘을 수 있나
그러나 당장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으로 옮기는 데는 ‘헌법 개정’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신행정수도에 대해 2004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며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므로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성문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위헌으로 폐기되고 ‘행정도시특별법’이 후속 대책으로 마련됐다. 행정도시특별법엔 국회와 청와대의 이전이 포함되지 못했고, 현재의 불완전한 행정도시인 ‘세종시’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 실제로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수도 이전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조항이었다. 그러나 이 개헌안은 야당의 비협조로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이 조항도 세종시로의 수도 이전을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나, 자유한국당은 4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조항을 담은 자체 개헌안을 발표함으로써 이 문제의 민감성을 드러냈다. 수도의 위치가 수도권 기득권의 원천이자 상징이란 점을 확인한 것이다.
■ 대안으로 제2국회 논의는 활발
결국 개헌 없이 청와대와 국회를 완전히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아직 개헌 논의도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수도 이전이 결정될 때까지 균형발전 효과와 정부 업무의 효율성 등을 높이기 위해 제시된 것이 국회 분원(제2국회)과 대통령 제2집무실(제2청와대)이다.
먼저 제2국회 설치와 관련해선 여당과 충청권에서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6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종의사당 설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2017년 대선 때는 주요 후보들이 세종시에 국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세종시는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39만3천㎡, 50만㎡, 55만1천㎡ 등 모두 세군데의 국회 후보지를 마련해놓았다. 또 국회 분원 설치를 검토하기 위한 2019년 세종시 예산도 10억원이 반영돼 있다. 국회 사무처도 지난 2월 국토연구원과 국회 업무효율성 제고를 위한 2차 연구인 ‘국회 분원 설치 및 운영 방안 연구 용역’을 수의계약했다.
실제로 국회 전체가 아닌 국회 분원 정도만 세종으로 옮겨도 수도권 인구가 분산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세종시 분원 설치의 타당성 연구’를 보면, 세종 소재 부처 소관 상임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만 세종으로 옮겨도 1800여명의 국회 공무원이 세종 등 충청권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수도권 인구는 약 2만5897명 줄고 충청권은 1만9201명, 영호남권은 4009명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경제효과로서 수도권 고용은 5569명이 줄고 충청권과 영호남권은 각각 4306명, 662명이 늘어나며, 지역내총생산도 매년 수도권에서 약 760억원이 줄고, 충청권은 650억원, 영호남권은 135억원이 늘 것으로 예측됐다.
■ 시작도 하지 않은 제2청와대 논의
국회 분원 설치와 함께 세종시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에 대해서도 충청권의 요구는 강하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지난 1월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 건의문을 청와대에 직접 전달했다. 이 시장은 건의문에서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면 41개 중앙행정기관과 15개 국책연구소, 5개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 제2집무실에 대한 청와대의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1월 청와대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포기하면서 세종시로의 집무실 이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세종시가 행정중심도시 본연의 역할을 한층 강화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한다. 그 방안 중에 (대통령) 집무 공간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종 집무공간 태스크포스는 아직까지 구성조차 되지 않았고 세종시 제2집무실에 대한 논의도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세종 제2집무실은 아직 주요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으며, 균형발전 차원에서 논의된 것도 아니었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정책실장 주재로 논의를 해보겠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세종시 제2집무실의 입지와 관련해선 2021년까지 정부세종청사 한가운데에 새로 지어지는 새 청사에 들어가는 방안과 총리 공관 주변에 마련된 17만㎡ 규모의 유보지에 짓는 방안이 있다.
국가균형발전위원인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세종시는 단순히 인구 분산이란 차원을 넘어 ‘지방이 서울에 종속됐다’는 인식을 바꾸고 있다. 좀 더 본격적인 균형발전과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선 국회와 청와대의 이전이 필수적이다. 일단 국회 분원과 청와대 제2집무실이라도 세종에 설치하면 상당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 결국 개헌 통해 완전 이전해야
그러나 국회 분원과 청와대 제2집무실은 제한된 효과만 거둘 수 있고, 결국 균형발전의 강화, 행정업무의 완결성을 위해선 국회와 청와대가 행정수도인 세종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행정수도’를 개헌을 통해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2국회와 제2청와대는 국회·청와대-행정부가 서울과 세종으로 분리돼 있어 나타나는 비효율성과 불안정성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업무가 안정되지 못하고, 공무원들이 끊임없이 서울과 세종을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제2국회와 제2청와대가 세종에 설치됐을 때 서울과 세종 사이에서 어떻게 업무를 나눌지도 논란거리다. 예를 들어 국회는 상임위·예결위를 세종에서, 본회의를 서울에서 열자는 의견이 나와 있다. 그러나 국회 업무의 연속성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나온다. 또 대통령의 경우도 내정은 관련 부처가 모두 이전한 세종에서, 통일·외교·국방 등 외무는 서울에서 볼 수 있으나 모든 사안이 내정과 외무로 무 자르듯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민원 전 위원장은 “현재 세종시는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행정수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주변 지역의 인구만 빨아들이고 있다. 세종시가 행정부의 중심이자 균형발전의 중추로서 일할 수 있게 개헌을 해서라도 제대로 된 ‘행정수도’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