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 장대 비(B)구역 재개발 해제 주민대책위원회가 22일 대전 유성구청에서 유성5일장·유성시장 재개발 반대 기자회견을 열어 시·구유지 동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유성 장대 비(B)구역 재개발 해제 주민대책위원회 제공
“시가 개발촉진구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행정기관은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땅이 지역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사건들의 배경인지를 살폈다면 촉진지구로 지정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공무원들이 개발을 못 도와줘 안달 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22일 오전 대전 유성구청장실 앞에서 ‘정용래 구청장 규탄 및 구유지 동의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연 대전 유성 장대 비(B)구역 재개발 해제 주민대책위원회와 유성5일장·유성시장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대전시가 장대 비구역 사업지에 포함된 시유지를 동의해주자 시청으로 항의하러 갔다가 “걱정 마시라”는 취지의 허태정 대전시장의 대답에 마음 놓고 있던 터라 ‘구유지 동의’ 소식은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유성5일장·유성시장을 지키려는 이유는 지금도 장날이면 논산, 공주, 금산 등 주변 지역에서 파는 이와 사는 이 2만여명이 찾는 대전권 유일의 5일장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은 논두렁 밭두렁에서 뜯은 계절 나물을 팔아 쌈짓돈을 모으고 흩어져 사는 동무들과 만나는 곳이었다. 또한 이곳은 3.1운동 때는 만세장터,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에는 을미의병 거병지로 구실 하며 지난 백 년 동안 지역민과 고락을 함께한 사적지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이날 정용래 구청장을 규탄하고 사죄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공무원들이 개발촉진지구로 지정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반대 주민 의견은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민간사업자가 서류만 넣으면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처리해 주는 행태가 한몫을 했다.
주민들은 “사업자는 재개발조합을 만들었다는데 설립 요건을 못 갖췄다. 따라서 개발업자는 현재 조합이 아니라 지주 동의작업을 하는 개인업자일 뿐인데도 시청과 구청은 업자가 국·공유지 동의 신청서를 내면 아주 신속하게 승인해준다”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비구역은 국공유지 35%, 사유지 65%로 이뤄졌는데 사유지 절반 정도가 재개발에 동의했다고 한다. 결국 국공유지 동의를 받으면 토지주 절반 이상 동의 요건을 충족하므로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면서 “시청과 구청이 동의했다면 유성장터와 시장 철거는 시간 문제 아니냐”고 되물었다.
1919년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백년 전통의 유성 5일장터와 유성시장이 고층 아파트촌으로 개발될 위기를 맞았다. 주민들은 유성5일장과 유성시장의 역사와 전통을 보전해야 한다며 개발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유성구 제공
주민들은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은 유성5일장·유성시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허태정 대전시장과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시·구유지 동의를 즉각 철회하는 등 재개발을 중단하고 보존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유성구는 “장대 비구역은 개발촉진구역이어서 민간사업자의 제안이 있으면 지원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대전시 관계자는 “유성장터·시장을 이전해 5일장과 재래시장의 전통을 이어가는 방안 등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이날 늦게 주민과 만나 “구유지 토지의 동의를 철회하고 개발촉진지구 국공유지의 동의가 의무인지 등에 대해 법률 검토하겠다. 조합 설립인가 신청에 대해서도 반려할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장대 비구역 전체 사업면적은 9만7213㎡이며, 민간사업자는 유성시장 등을 철거하고 3천 세대 규모의 최고 47층 짜리 아파트를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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