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 서원대 교수가 28일 <대만일일신보> 보도 등을 근거로 단재 신채호 선생의 타이완 외국환 사건 체포·신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단재는 일어로 진술하지 않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행적 등을 연구해온 허원 서원대 교수(역사교육학)가 1928년 5월 8일 타이완에서 외국환 위조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단재 관련 새 연구 논문을 28일 내놨다. 지금껏 나온 논문·저술 등은 “단재가 체포 다음 날 일본어로 자백했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하지만 허 교수는 ‘단재 신채호의 체포·신문(타이완 지롱) 관련 자료 발굴과 사실 고증’ 논문에서 단재는 일어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타이완 신문 <대만일일신보> 기사와 타이완 경찰 기관지 <대만경찰협회잡지> 고증 등을 통해 단재의 당시 행적을 추적했다. 1928년 5월 12일 치 <대만일일신보>(한자판)단재 체포 관련 기사를 보면, “단재는 난 중국인이고 일본어나 조선어는 모른다고 했다. 중국인을 고용해 대답하게 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일본 경찰이 ‘너 조선인 단재지’라고 하자 맹렬히 저항했다. 다음날 사실을 토로했다”고 돼 있다. 허 교수는 “기사 어디에도 단재가 일어로 진술했다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허원 서원대 교수가 28일 단재 신채호 선생의 타이완 외국환 사건 체포·신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같은 신문 일어판은 “그(단재)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필담을 요구해 경관들을 애타게 했다. 일본 경찰이 ‘너 조선인 단재지’라고 고함을 지르자 그의 따귀를 때리는 등 흉포한 모습을 보였다. 다음날 자백했다”고 돼 있다. 허 교수는 “일어판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묘사했다. 역시 일어로 자백했다는 말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단재가 일본 경찰에게 한 행동으로 미뤄 일어로 자백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단재의 ‘일어 자백설’의 출발은 ‘신채호 아나키즘 수용과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박걸순·2011년) 논문이다. 이 논문에선 당시 상황에 대해 “일경이 중국인을 불러 대담하게 하자, 단재는 이튿날 일본어로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시했다. 이어진 <신채호 다시 읽기>(이호룡·2014년)등도 “중국인을 불러 대담하게 하자 일본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이를 두고 허 교수는 “박걸순 선생도 <대만일일신보> 등을 토대로 단재 행적을 기록했지만 오독하거나 자의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른 저술은 박 선생의 선행 연구를 그대로 옮긴듯하다”고 말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을 체포한 일본 경찰 여세산 관련 글이 수록된 타이완 경찰 기관지 <대만경찰협회잡지>. 허원 제공
허 교수는 단재의 ‘일어 자백설’ 오류 근거로 자신이 발굴한 <대만경찰협회잡지>(1928년 11월)를 제시했다. 이 기관지는 당시 단재를 체포한 일본 경찰 여세산 관련 글에서 “당시 배에서 일본인 복장을 한 중국인풍 승객(단재)에게 ‘북경어를 할 줄 압니까’라고 수차례 물었지만 답이 없어 조선어로 물었다. 조선어 지식이 얕아 해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취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했다. 허 교수는 “이는 단재 행적 연구에 중요한 사료다. 경찰 내부 기관지여서 일어나 중국어로 검문한 것을 조선어로 했다고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중국 다롄으로 옮긴 법정에서 일본 재판장이 ‘대정 14년에 동방연맹(아나키스트연맹)에 가입했나’라고 묻자 단재는 ‘일본 연대는 써보지 않아 대정 몇 년이란 것은 모른다’고 했다. 일본 법정에서도 조선어로 당당하게 답했을 것이다. 체포 당시 일어 진술은 단재의 정체성으로 미뤄 보면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체포 관련 <조선일보> 기사.♣H6 허원 교수 제공
허 교수는 일본 항에서 구마루(항춘환)배에 올라 타이완 지롱에 이르기까지 단재의 행적, 체포·진술 장소 등의 오류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엔 <조선일보>(1928년 12월 28일 치)의 “타이완 지롱항에 도착해 상륙하려다 체포됐다”는 보도를 근거로 ‘지롱항 체포’가 주류였다. 하지만 허 교수는 “<대만일일신보>보도 등을 종합하면 지룽우체국에서 위조 외국환을 현금화하려다 현장에서 체포됐다”고 밝혔다.
허원 서원대 교수가 28일 <대만일일신보> 보도 등을 근거로 단재 신채호 선생의 타이완 외국환 사건 체포·신문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오윤주 기자
진술 장소 또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단재를 체포한 이는 지룽경찰서 수상파출소 소속 일본 경찰 유세문이었고, 진술은 지롱수상경찰서(파출소)가 아니라 지롱경찰서 본서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은 단재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로 지롱수상경찰서를 들고, 이곳에서 단재의 취조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