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수미(55·사진) 경기도 성남시장 당선자가 2016년 2월24일 국회에서 남긴 말이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그는 국가정보원의 권력을 강화하고 인권탄압에 악용될 우려가 큰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10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연설)를 벌였다.
지난 23일 오후 성남종합운동장에 마련한 당선자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말의 의미를 행정가로서 실천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은 당선자는 “시민의 삶이 양극화하면 할수록 시민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 격차는 차별로 확대되고, 차별은 시민을 분열시킬 수밖에 없다. 저에게 주어진 4년 동안 성남시민이면 누구나 주권자로서의 동등한 기회와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거대 기초자치단체를 이끌게 된 은 당선자는 자신을 “단호하고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저와 손발을 맞춰 시민을 받드는 일을 하게 될 2800여 공직자들은 서로 고생할 것이다. 우리가 고생하는 만큼 시민의 삶은 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거대도시의 첫 여성 당선자여서 주목받는 것은 싫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시장으로 관심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민선 7기 성남시정 준비위원장(인수위원장)을 직접 맡은 은 당선자는 지난 22일 공약이행 보고 회의를 15시간 30분 동안 주재하며 강행군을 펼쳐, 이런 의지를 확인시켜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년배당’ 등 이른바 ‘이재명표 복지정책’을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그는 △18살 미만 어린이 병원비 100만원 상한제 △지역화폐 1000억원 발행 △시민청원제 △재개발에 따른 도심 공동화 방지 △권역별 특성화 첨단산업 육성(아시아실리콘밸리) 등을 약속했다. 은 당선자는 또한, 여소야대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온 성남시 의회와의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 ‘협치’를 내세웠고, 최근 야당 당선 시의원 10여명과 만나 시정 운영 방안에 협조하기도 했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조직폭력배 지원 운전기사 채용’ 등의 문제에 대해 그는 “자신 있게 소명할 수 있고 정치적 음해라는 증거가 충분히 있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명백한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저는 더욱 떳떳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 당선자는 1992년 초 당시 정부가 '반국가 단체'로 규정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돼 6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오랜 독방생활과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결핵, 폐렴 등 각종 병을 앓은 데다,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2005년 박사학위를 받고 노동전문가가 된 은 당선자는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역임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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