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6일 경기 안산시 선감도 선감학원 원생 유해 매장 현장에서 열린 위령제 모습. 지역사연구소 제공
‘담장 없는 감옥’으로 알려진 경기 안산시 선감도의 비극은 사실상 국가폭력이며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가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21일 <한겨레>가 확보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를 보면,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에 행정상으로는 조선사회사업협회라는 민간단체에 의해 운영되는 형태를 가졌지만, 실제로는 조선감화령이라는 법령에 근거하여 식민지를 통치하는 조선총독부가 직접 그 설치와 운영에도 관여했다”라고 돼 있다. 이 보고서는 인권위가 지역사연구소와 아시아문화연구원 등에 의뢰해 마련했다.
보고서에는 선감학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이 국가범죄라는 대목도 나온다. 인권위는 보고서를 통해 “해방 이후부터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선감학원을 통한 강제수용과 감금, 인권침해행위는 국가의 부랑아 일소라는 계획과 국가기관의 영향력 아래에서 자행된 것으로 국가범죄이자 인권범죄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가 ‘조선소년령’을 발표하고 선감도에 지었던 부랑아 보호시설로 일제의 패망과 함께 미군정을 거쳐 한국으로 넘겨진 뒤 1982년 경기도가 완전히 폐쇄할 때까지 운영됐다.
국가인권위는 “선감학원에서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정권에까지 그 운영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강제수용, 구금, 강제격리, 강제노동, 강제규율, 일상적인 폭력, 실종 및 사망, 인간사냥, 노예화 등 부랑아에 대한 중대한 인권범죄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선감학원 생존원생들이 바라는 선감학원 문제 해결책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중에서.
선감학원에서 벌어진 인권유린이 사실상 국가범죄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내려졌지만, 선감학원의 수용 원생은 물론 전체적인 피해자 규모조차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담장 없는 감옥 선감도의 비극’에 대한 <한겨레> 보도(<한겨레> 2015년 10월 5일치 19면) 이후 경기도의회가 2016년 2월4일 선감학원 진상조사 및 지원대책 마련 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하면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다만, 올해 초 경기도가 마련한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조사계획 수립 용역 최종보고서’를 보면, 국가기록원과 경기도기록관에 보관된 자료 등을 통해 4710건의 퇴원아 대장(1956~1982년)이 확인되는 등 부분적으로 실태가 드러났을 뿐이다.
정진각 지역사연구소장은 “선감학원과 관련해 지방정부에 있는 원생들의 매·화장 허가서나 경기도에 있는 원생 명부를 조사하려고 하면 ‘장부를 찾을 수 없다’거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부됐다. 지방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확보하고 당시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면담을 통해 국가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선감학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권고 여부를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22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토론회’를 연다.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