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회 ‘진상조사 보고서’ 내
“부모나 연고자 있는 청소년들도
공무원들이 실적 채우려 잡아와”
강제노동 피해자들 후유증 호소
도의회, 생존자 치유, 사망자 위로
“부모나 연고자 있는 청소년들도
공무원들이 실적 채우려 잡아와”
강제노동 피해자들 후유증 호소
도의회, 생존자 치유, 사망자 위로
‘담장 없는 감옥’으로 알려진 선감학원(<한겨레> 2015년 10월5일치 19면)이 원생 다수를 납치·감금하고, 시설에서도 강제노동과 성폭행을 가하는 등 사실상 ‘부랑아에 대한 제노사이드’(학살)였다는 경기도의회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가 부랑아 수용을 목적으로 만든 뒤 광복 이후에도 1946~1982년 36년 동안 수도권에서 불량행위를 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8~18살의 청소년을 집단 수용해 인권을 짓밟은 곳이다. 선감학원은 경기도 안산 앞에 있던 선감도에 있었다.
경기도의회는 2015년 <한겨레>의 보도 뒤 ‘진상조사 특위(위원장 김달수·민주당·고양8)’를 구성해 1년 동안의 조사 끝에 27일 500여쪽의 ‘선감학원 사건 진상 조사 및 지원방안 최종 조사보고서’를 냈다.
최종 조사보고서는 “국가 차원에서 세운 선감학원의 원생 운영 정책은 부랑아의 구제가 아니라 부랑아 자체를 절멸의 대상으로 보는 일종의 제노사이드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선감학원 생존자와 당시 직원 등 31명의 구술 증언과 각종 기록을 토대로 작성됐다.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장은 “부랑아로 지목된 아이들 대다수가 알려진 것과 달리 집과 부모가 있는 빈민 아동이었다. 선감학원의 설립 목적이었던 교화와 직업훈련은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는 부모가 있던 곽아무개(53)씨는 1969년 수원 화서문 인근에서 놀다 붙잡혀 수원시청을 거쳐 선감학원으로 넘겨졌다. “생으로 붙들려와서 7~8년을 살았어요. 아무 죄도 없는 애를 데려다…” 선감학원에서 나왔으나 가족을 찾지 못한 채 스님이 된 그는 “(선감학원이 섬에 있어) 지금도 바다를 보면 머리가 해까닥 돌아요”라고 말했다. 곽씨 등 생존자 다수가 이런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1963년 수용됐다 3년 만에 선감도에서 탈출한 ㄱ목사(64)는 “낫으로 협박하거나 탈출시켜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간부들이 원생들을 수시로 성폭행했다. 나도 당시 당한 후유증으로 지금 몸이 망가졌다. 지금 같으면 M1 소총으로 다 쏴죽였을 것”이라고 고통을 털어놨다.
이 보고서는 “당시 생존자 증언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1964년도에 수용된 선감학원생 472명 중 3분의 2는 부모나 연고자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고 1957년부터 1978년 사이에만 최소 1만명의 원생이 거쳐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선감도에 감금돼 사회와 격리된 채 돌도끼 등을 이용해 강제 노동에 동원됐고 배고픔에도 시달렸다.
조사에 참여했던 하금철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편집장은 “선감학원의 본질은 부랑아로 지목된 가난한 소년들을 범죄성의 원천으로 여기고 사회로부터 격리해 절멸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곳에서 자행된 잔혹한 폭력은 단순히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를 넘어 빈곤 아동에 대한 일종의 제노사이드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 선감학원 진상조사 특위는 오는 9월 공식 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김달수 특위 위원장은 “애초 선감학원은 부랑아를 모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실적을 위해 가난한 아동을 납치 감금하기도 했다. 가칭 ‘선감평화재단’을 통해 생존자 치료와 사망자 위령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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