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다음날인 14일 오후 대구 동구 각산동 도로가에 대한애국당 후보의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일우 기자
“(북한이) 비핵화 하면 그 많은 돈을 누가 내겠어요? (우리가) 해줘야 하는 거지, 트럼프가 해줄까?”
6·13 지방선거 다음날인 14일 오후 2시께 대구 동구 각산동에 있는 한 경로당 앞에서 만난 73살 남성은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북이 엄청난 발전을 할 거예요.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납니까? 뻔한 거 아닙니까?”
그는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그 어떤 정당도 싫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럼 투표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 나는 (투표하러) 가서 골고루 다 찍어줄라 캤지. 근데 누가 찍어도 한국당은 찍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나라가 되는 거지.” 그는 민주당이 독주하는 지금의 정치 지형에 걱정도 나타냈다. “한 20년 동안 선거해도 정권 바뀔지 안 바뀔지 모르지만, 머 세월이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당도 세력이 너무 세면 안 돼. 아무 때나 쿵쿵 방망이 누를까봐 그게 걱정이지….” 그는 여러 차례 정치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선거해봤자 우리한테 이득 돌아오는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선된 사람이랑 자기 가문 영광 위해 하는 거지.”
정치를 불신하면서도 한국당을 찍는 이유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6·25 때 돌아가시고 나는 고엽제 출신이고 그래요. 제가 민주당 좋다, 자유당(한국당) 좋다 이런 거는 안 해요. 그래도 (내가) 살아온 과정이….” 그는 말끝을 흐렸다.
각산동 한 경로당 안에서는 할머니 5명이 화투를 치고 있었다.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내자 할머니들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우리는 그런 거(선거)에 관심 없어요. 잘 모르고.” 하지만 투표를 했느냐고 묻자 다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아끼던 할머니 한명이 결국 입을 뗐다. “우리야 머 늘 찍던 거 찍는 거지, 다를 게 뭐가 있겠어요.”
대구와 경북에서는 이번에 꽤 많은 민주당 기초·광역의원 당선자가 나왔다. 반면 기초·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구미시장을 빼고 민주당이 참패했다. 특히 팽팽한 승부가 예상됐던 대구 수성구청장·북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10% 안팎으로 뒤진다는 개표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 쪽에서는 실망하는 분위기가 크다.
직장인 임아무개(54)씨는 “처음에는 한국당을 심판하고 일침을 가하려고 민주당을 찍으려고 했는데 전국적으로 너무 한쪽 쏠림 현상이 심해지니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단체장은 한국당을 찍고 지방의원은 민주당을 찍었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민주당 대구시장 관계자는 “한국당이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라도 안 찍어주면 한국당은 어쩌냐’는 심리가 막판에 좀 작용했던 것 같다. 문재인 정부 견제 심리도 컸다. 대구 사람들은 민주당 정치인을 행정의 견제자나 감시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보려고 하고, 민주당 정치인이 행정을 이끈다면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와 경북에 출마한 민주당 광역·기초단체장 후보들의 자질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대구에서 사회적기업 육성 일을 하는 전충훈(44) 북성로허브 사무국장은 “나는 비례대표는 진보정당을 찍어줬고 지역구 선거는 민주당 후보를 많이 찍었다. 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 후보의 인물 차이가 나는 경우에는 한국당 후보를 찍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한국당 후보보다 인물이 부족한 민주당 후보가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변화의 분위기도 느껴졌다. 직장인 장아무개(37)씨는 “비례대표는 정의당, 지역구 선거는 민주당 후보를 모두 찍었다. 그런데 전국에서 대구와 경북만 빨간색으로 돼 있는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특히 대구시교육감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 출신인 강은희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채장수(50)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대구에서 한국당 독점 구도가 어느 정도 깨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졌다고 대구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대구의 변화는 민주당이 일대일로 맞붙는 큰 선거에서 아직 이길 정도로 현실화되지 않은 것뿐이다. 지역주의 투표 행위가 약화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김일우 구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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