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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편이냐” 노동이사가 넘어야 할 첫번째 관문

등록 2017-02-21 10:44수정 2017-02-21 10:53

‘경제민주화의 길’ 노동이사제 (하)
서울시 노동이사제 성공하려면

전문성·교육·독립성·연대 중요
반대 위한 반대 아닌 좋은 경영 책임
노동자가 직접 뽑는게 제일 중요
시장이 임명한다면 시장 눈치볼 수도
경영진·노조 양쪽에서 견제와 비판
골깊은 노사 모두 제3의 돌파구 과제
네덜란드, 독일모델 개조해 ‘더 탄탄’
네덜란드는 1970년대 당초 ‘독일식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다 주주대표 쪽 이사와 노동이사 비율이 5대 5일 경우 갈등이 더 야기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외부인에게만 노동이사 자격을 주거나 사업장협의회 역할을 강화하는 등의 절충안으로 제도를 안착시켰다. 그럼에도 노동이사제 구실, 전국 노총의 임단협 지배력, 기업 내 노조나 사업장협의회의 경영참여 정도를 합산 계량화한 유럽참여지수(EPI)에선 네덜란드가 독일을 앞선다.

이제 막 발을 뗀 서울시의 노동이사제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제도를 뿌리내리려고 저마다의 실험을 더해온 유럽 여러 국가의 경험자들이 한국에 건넨 첫번째 조언은 노동자 대표 이사의 전문성이다.

서울시는 지난 2년 ‘노동이사제’를 준비하는 동안 연구용역, 각종 토론회, 해외 사례연수 등을 진행했다. 시 담당 직원, 산하기관 노사 관계자들(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17일 독일을 방문, 베를린시 요르그 크리스티안 엔스트 재무장관으로부터 산하 55개 기관의 노동이사제 특징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서울시는 지난 2년 ‘노동이사제’를 준비하는 동안 연구용역, 각종 토론회, 해외 사례연수 등을 진행했다. 시 담당 직원, 산하기관 노사 관계자들(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17일 독일을 방문, 베를린시 요르그 크리스티안 엔스트 재무장관으로부터 산하 55개 기관의 노동이사제 특징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효과’를 보면 과제도 보인다. 스웨덴 이사회 의장이나 전무 이사들은 노동이사제의 장점으로 ‘협력적 분위기 제고’, ‘이사회 결정의 수용성 제고’, ‘어려운 결정의 실행력 제고’ 등을 먼저 꼽았다. 노동자 출신의 이사가 수행해야 할 기능이란 말이기도 하다. 국내에도 사업장을 둔 자동차부품회사 SKF의 노동이사 자르코 주로비치는 “우리 목적은 이사회 반대가 아니라, 노동 전문가로서 경영 전반에 더 나은 통찰을 주고 더 좋은 결정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동권에 대한 이해, 소통능력, 책임감 따위가 요구되는 셈이다.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노사정위원회나, 전국 노총과 경총이 함께 기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될 법하다. SKF 16년차 노동이사 케네트 칼손은 “내가 처음 할 때 교육이 없어 이전 노동이사한테 배웠다. 회계자료도 읽어야 하고, 영어도 필요했다. 5~6년 전부턴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22일 스웨덴 사무노조(PTK)를 방문해 '사무직 출신 노동이사'를 대상으로 하는 역량 교육방법 등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서울시 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22일 스웨덴 사무노조(PTK)를 방문해 '사무직 출신 노동이사'를 대상으로 하는 역량 교육방법 등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네덜란드 연금운용사 APG의 노동이사 에디트 스누이는 ‘전문 경영인들이 무시하려는 분위기는 없느냐’는 질문에 “없다. 만일 직원들 해고 문제가 안건이라고 치자. 모든 이사들이 나만 바라본다”며 “아이티(IT) 전문이사가 있듯, 노동전문 이사가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규정에 따라 에디트를 노동이사로 추천한 APG의 사업장협의회 간사 프로우드 타지우(사업분석팀)는 “제일 먼저 노동을 우선에 두느냐, 다음 우리 회사 업무(재정, 연금 부문)와 관련한 지식, 경력이 있느냐를 봤다”고 말했다. 스웨덴 경총(SN)의 올라 브린넨 법률자문은 “이사회 이사로서 재정 등 공부가 필요하다. 경영자 관점을 갖춰야 한다”고도 말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독일 전문가들은 독립성을 강조했다. “노동자 대표를 노동자가 직접 선출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서울시처럼 최종 임명을 시장이 한다면 노동자 권익보다 후보추천위나 시장 눈치를 볼 수도 있다”(뒤셀도르프시 공기업인 라인반의 하이코 괴벨 노동이사)는 말로 압축된다. 그를 통해 노동자들의 신뢰도 온전해진다는 논리다. 노동이사제 시행 국가에서 최종 임명권한을 내부 직원이 아닌 이가 갖는 곳은 그리스·아일랜드(유관부처 장관), 네덜란드·헝가리(주총) 정도다.

전문성과 신뢰가 높아도 노동이사는 숙명적으로 ‘절대 소수’다. 서울은 이사회 전체 10% 수준으로 더 적다. 때문에 존립 기반을 강조하는 이들도 적잖다. 네덜란드 노총(FNV)의 카텔레너 파스키에 부위원장(변호사 출신)은 “노동이사들은 고립되면 안된다. 본인을 추천한 그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왜 추천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시 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21일 응급환자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스웨덴 스톡홀롬공공병원에서 대표이사, 노동이사 등을 만나 공공병원의 우선가치, 노조와 노동이사와의 관계 등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서울시 노동이사 해외답사단이 2015년 9월21일 응급환자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스웨덴 스톡홀롬공공병원에서 대표이사, 노동이사 등을 만나 공공병원의 우선가치, 노조와 노동이사와의 관계 등을 설명 듣고 있다. 서울시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제공
결국 노동이사는 어떤 결정에 있어선 경영진의 견제뿐 아니라 노조의 견제나 비판도 감당할 수밖에 없다. 특정 노조(집단) 편향이면 기존의 대결 중심 노사 관계를 대리하기 쉽고, 경영계에 포섭되면 이른바 노조파괴 노무법인으로 알려졌던 창조컨설팅의 노무사가 이사로 참여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SKF 최장수 노동이사 케네트는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당신은 누구 편인가’다”라고 말했다.

유럽에 견줘, 상위법 미비로 제도적 뒷받침이 덜한 서울시나 성남시의 노동이사에겐 스스로 돌파해야 할 과제가 많은 셈이다. 그럼에도 골 깊은 노사 모두에 제3의 돌파구가 요구되는 것 또한 과제다.

예테보리 관광부문 공기업의 헬레네 브륀펠트 노동이사(노조위원장)는 서울시 성공조건으로 “이사회가 열린 대화, 힘든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만일 시가 민영화를 결정한다면’이란 험악한 질문을 던졌다. “상상이 안 가고 이사회 다수가 결정을 하겠지만,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기록에 남기는 게 내 몫이다. 실제 20명을 정리해고하는 의결에 어떤 노동이사 1명은 ‘난 반대한다고 기록해달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첫 족적은 좁을지언정 선명할 수 있단 얘기다.

스톡홀름·예테보리/임인택 기자, 뒤셀도르프/곽정수 선임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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