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부산 소녀상 앞에서 현대 춤꾼 방영미씨가 소녀상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부산민예총 제공
경찰이 시민들이 설립한 부산 소녀상을 지키려는 무용가들의 공연집회를 불허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이 집회를 허가해 춤 공연은 무사히 끝났지만, 경찰이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인 여성 성노예화 만행을 고발하고 일본의 진심 어린 반성을 촉구하는 평화적인 예술집회를 막으려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사단법인 부산민예총과 부산 동부경찰서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민예총은 지난달 25일 오후 2시께 부산 동부경찰서에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옆 인도 위에 세워진 부산 소녀상 앞에서 4·11·18일 세 차례, 오후 5시부터 1시간 동안 무용인들이 춤 공연을 펼치는 집회를 한다”고 신고했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다음날 저녁 7시께 부산진구 전포동 부산민예총 사무실을 찾아가 집회 불허를 알리는 통지서를 전달했다. 부산민예총은 법무법인 ‘민심’을 통해 3일 오후 4시께 부산지법에 경찰의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했다. 이에 부산지법 행정2부(재판장 한영표)는 3일 저녁 7시께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 취소 청구 사건의 판결 선고까지 집행을 정지하라”고 결정했다. 집행정지 신청 3시간 만에 법원이 신청인의 청구를 받아들인 것은 이례적이다.
부산 동부경찰서가 부산 소녀상 앞 집회를 금지한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1조는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 외교기관 건물과 외교사절의 숙소로부터 100m 안에서는 집회를 할 수가 없다’고 하는데, 부산 소녀상은 일본영사관에서 100m 안에 있다는 것이다. 또 매주 토요일 저녁 6시께 열리는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1시간 앞서 열리는 부산민예총 집회에 합류하면 일본총영사관 오물 투척 등이 우려되는 데다 일본총영사관이 시설물 보호 요청을 한 사례도 있다는 게 경찰 쪽 주장이다.
지난 4일 부산 소녀상 앞에서 팝핀 댄서 천권준씨가 스트릿댄스를 하고 있다. 부산민예총 제공
하지만 재판부는 외국 외교기관 건물과 외교사절의 숙소로부터 100m 안이라도 △휴일이거나 △외교기관 건물 또는 외교기관의 숙소를 대상으로 하지 않거나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확산할 우려가 없을 때 등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집회를 할 수가 있다는 집시법 11조의 예외 조항을 인용했다.
부산민예총의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은 일본총영사관의 휴무일이고, 춤 위주의 집회가 1시간만 열려서 평화로운 집회가 예상되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부산민예총 주최 집회에 참여하더라도 대규모 불법시위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4일 열린 첫 번째 부산민예총 주최 집회에선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춤 공연이 평화롭게 열렸다. 집회 이름이 ‘부산 소녀상 지킴이 예술시위’였으나 시민들이 부산민예총 춤위원회 소속 회원들의 춤을 길거리에서 관람하는 문화공연이었다.
지난 4일 부산 소녀상 앞에서 현대 춤꾼 박재현씨가 각시탈을 쓰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부산민예총 제공
부산민예총이 이달 말께 추가 집회를 신청하면 경찰이 허가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부산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4일 집회는 평화롭게 끝났다. 부산민예총이 추가 집회를 신고하면 이미 허가한 세 차례 집회를 지켜본 뒤 허용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부산민예총은 경찰이 무리한 법 적용을 한다고 반발했다. 부산민예총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이 났는데도 경찰이 추가 집회를 불허한다면 집회를 강행할 것이다. 경찰이 소녀상을 둘러싼 한일 정부의 외교 마찰과 보수단체의 최근 집회 분위기를 의식해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수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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