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독자 자발적 구독운동
첫발 뗀 ‘한겨레 부산클럽’
첫발 뗀 ‘한겨레 부산클럽’
지난 3월25일 저녁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와이엠시에이(YMCA) 회의실에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1987년 6월항쟁의 불씨가 됐던 부산 출신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 앉았다. 어느덧 70여석 규모의 회의실은 빈자리가 없었다. 이어 ‘한겨레신문 부산 주주독자클럽’(한겨레 부산클럽) 창립총회가 열렸다.
한겨레 부산클럽은 부산의 <한겨레> 주주와 독자들이 세계 유일의 국민 주주 신문인 <한겨레> 구독자를 늘리겠다며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현재 회원은 100여명이며 주부, 사업가, 시민사회 활동가 등 다양한 계층의 40~60대가 주축이다. 사람들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뉴스를 공짜로 보는 데 익숙해져 제 돈 내고 신문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와 주주들이 자신이 보고 있는 신문을 주변에 권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 11일 저녁 한겨레 부산클럽을 이끌고 있는 운영위원들이 한겨레 부산지사(부산 연제구 거제동)에서 모였다. 오는 28일 세번째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날 운영위원들은 한겨레 부산클럽 운영방안과 세번째 모임 초청 강사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한겨레 부산클럽은 다달이 마지막 목요일 저녁 7시 정기모임을 한다. <한겨레> 독자를 늘리는 구독운동과 <한겨레> 필진과 논설위원, 기자를 초청해 정치·교양 강좌를 듣는 것이 핵심 활동이다.
운영위원들은 시대 상황이 자신들을 한겨레 부산클럽으로 불러모았다고 입을 모았다. 문구점을 운영하는 정진영(53)씨는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새누리당이 압승한 4월 재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황당하다”고 말했다. 답답한 마음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한겨레 구독운동이 조그만 실천이란 설명이다.
한겨레 부산클럽 회원들은 보수 성향이 강한 부산 정치 지형을 바꾸고 싶어했다. 박상도(69) 운영위원은 “부산시민의 보수적인 시각이 답답하다. 부산의 정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론지 <한겨레> 구독이 늘면 민주화의 역행을 막고 부산의 정치 지형이 바뀔 수 있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회원 박용운(47)씨는 “부산은 1979년 10월 유신독재를 허문 부마항쟁과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1987년 6월항쟁의 불을 댕긴 곳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0년 당시 여당 등과 합당한 이후 부산 분위기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보수화된 것 같다. <한겨레>가 이런 분위기를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박종철 열사 아버지 박정기씨 등
부산 주주·독자 100여명 참여
보수성향 강한 지역 정치 지형
한겨레 구독 늘어 바뀌길 기대
주변에 구독 권유하려 힘 합쳐 창간호~지금껏 신문 보관한 회원
신문 주식 아들에 물려준 회원도
“대 이어 한겨레 지켜달란 뜻” ‘기사 어렵고 여전히 내용 딱딱’
애정 어린 지적·발전안 내놓기도 <한겨레>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최종태(54) 운영위원은 1988년 5월 <한겨레> 창간 당시 <한겨레>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새벽마다 부산의 골목골목을 누볐다고 한다. 그는 “당시 <한겨레> 구독운동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청년단체 회원들과 지국에서 신문을 기다렸다가 <한겨레>가 도착하면 신나게 배달을 했다”고 회고했다. “나에게 <한겨레>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종태 운영위원은 “삶이 고단할 때 기댈 언덕이자 응원군”이라고 말했다. 개인 사정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이륜정(44)씨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밝혀주는 대학 선배와 같은 존재”라고 문자로 알려왔다. 이씨는 9명의 운영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이다. 이종대 회원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한겨레>를 모두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54)과 한겨레 부산클럽에 가입한 조병구(84)씨는 <한겨레> 창간 때 500만원을 들여 구입한 주식 1000주를 올해 초 아들한테 주었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한겨레>를 지켜달라는 뜻에서다. 남편과 <한겨레> 기자가 꿈인 아들(고1)과 함께 한겨레 부산클럽에 가입한 천미해(52)씨 가족은 이전에는 보수 성향의 다른 신문을 3년간 구독했다. 이들은 우연히 <한겨레>를 접하면서 보던 신문을 끊고 2년 전부터 <한겨레> 독자가 됐다.
한겨레 부산클럽 회원들은 <한겨레> 구독자란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전직 교사인 김아무개(58)씨는 “창간호부터 <한겨레>를 구독했다. 교사 재직 시절엔 다른 사람들도 신문을 볼 수 있게 학교에 일부러 신문을 갖다 놓았다. 특별한 현안이 있으면 다량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정의롭고 객관적인 신문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다. 노갑현(61) 운영위원은 “국민주 신문 <한겨레>는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는 신문이다. 일부에서 <한겨레>를 두고 험한 말을 하는데 사실을 그대로 알리는 것을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운영위원들은 <한겨레>에 대한 애정 어린 아쉬움을 지적하거나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이륜정 운영위원은 “주부의 입장에서 기사와 칼럼이 어려워서 읽기 힘들다. 오피니언면에서라도 다양한 시각과 쉬운 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영 운영위원은 “통합진보당 사태 보도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고 말했다. 노갑현 운영위원은 “요즘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내용이 딱딱하다. <중앙일보>와 사설 내용을 비교하는 코너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최종태 운영위원은 “지방에도 한겨레문화센터를 개설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상윤(62) 운영위원은 “일반인에게는 논조가 강하게 보이지만 사회운동을 하는 관점에선 신문 논조가 약해진 것 같다. 고리원전 1호기 폐로 문제 등 지역 현안 문제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부산클럽 운영진은 구독운동을 일회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장기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박상도 운영위원은 “<한겨레> 구독운동이 민주화운동과 다르지 않다”며 “몇달치 구독료를 내가 부담해서 <한겨레> 독자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배다지(82) 운영위원은 “<한겨레>는 밥과 물을 주고 가꾸어 키워야 한다. <한겨레> 구독운동이 쉽지는 않겠지만 영광되고 보람있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일민(76) 회장은 “매우 척박한 정치·언론 환경에서 <한겨레>가 그래도 자기 페이스를 꿋꿋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겨레>가 좀더 명확한 사명의식을 가지고 민족사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란다. 한겨레 부산클럽은 그런 신문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부산 주주·독자 100여명 참여
보수성향 강한 지역 정치 지형
한겨레 구독 늘어 바뀌길 기대
주변에 구독 권유하려 힘 합쳐 창간호~지금껏 신문 보관한 회원
신문 주식 아들에 물려준 회원도
“대 이어 한겨레 지켜달란 뜻” ‘기사 어렵고 여전히 내용 딱딱’
애정 어린 지적·발전안 내놓기도 <한겨레>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최종태(54) 운영위원은 1988년 5월 <한겨레> 창간 당시 <한겨레>를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해 새벽마다 부산의 골목골목을 누볐다고 한다. 그는 “당시 <한겨레> 구독운동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청년단체 회원들과 지국에서 신문을 기다렸다가 <한겨레>가 도착하면 신나게 배달을 했다”고 회고했다. “나에게 <한겨레>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최종태 운영위원은 “삶이 고단할 때 기댈 언덕이자 응원군”이라고 말했다. 개인 사정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이륜정(44)씨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밝혀주는 대학 선배와 같은 존재”라고 문자로 알려왔다. 이씨는 9명의 운영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이다. 이종대 회원은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행된 <한겨레>를 모두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54)과 한겨레 부산클럽에 가입한 조병구(84)씨는 <한겨레> 창간 때 500만원을 들여 구입한 주식 1000주를 올해 초 아들한테 주었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한겨레>를 지켜달라는 뜻에서다. 남편과 <한겨레> 기자가 꿈인 아들(고1)과 함께 한겨레 부산클럽에 가입한 천미해(52)씨 가족은 이전에는 보수 성향의 다른 신문을 3년간 구독했다. 이들은 우연히 <한겨레>를 접하면서 보던 신문을 끊고 2년 전부터 <한겨레> 독자가 됐다.
지난달 29일 한겨레신문 부산 주주독자클럽 두번째 모임의 참가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리인수 한겨레 주주통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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