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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광을 다시 한번’ 쇠락한 인천항 ‘부활의 뱃고동’

등록 2013-06-23 22:24수정 2013-06-24 08:29

인천항 부두에서 화물차가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있다. 올해 개항 130년을 맞은 인천항은 최근 물동량이 급감해 관련 업계가 위기에 놓여 있다. 인천항만공사 제공
인천항 부두에서 화물차가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있다. 올해 개항 130년을 맞은 인천항은 최근 물동량이 급감해 관련 업계가 위기에 놓여 있다. 인천항만공사 제공
[수도권 쏙] 개항 130년 인천항의 위기
1883년 개항한 이래 130년 동안 일제 강점기엔 대륙침략 병참기지로, 해방 뒤엔 수도권 관문과 산업화 중심항으로 기능해온 인천항. 2000년 이후 물동량이 급감하는 등 위기를 맞아 ‘제2개항’을 선언한 인천항의 고민을 살펴본다.

수도권 과밀억제 탓에 물동량 줄어
조선의 관문서 전국 4위 항구 추락
제2개항 선언하고 재기의 몸부림
민·관, 활성화 위한 정부지원 요청
“대형선박용 깊은 수심 허용해달라”

20일 오전 인천 중구 항동 인천항 내항 5부두는 승용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옆엔 한국지엠(GM) 부평공장에서 생산한 7600여대를 실을 5만t급 자동차 수송 전용선이 접안해 있었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니, 나머지 부두는 한산할 뿐이었다. 인천항 내항은 1~8부두에 배 48척을 동시에 댈 수 있지만 이날 접안한 배는 10여척에 그쳤다. 선박들이 워낙 몰려들어 부두에 대려면 앞바다에서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하곤 했던 1990년대에 견주면 천양지차다. 인천항이 1883년 개항 뒤 130년이 지난 지금 한때 찬란했던 ‘영광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인천 지역사회는 ‘제2개항’을 외치고 나섰다.

■ 위기의 인천항 인천항은 2000년대 들어 시들기 시작했다. 2003~2012년 10년 동안 연평균 물동량(화물처리량)이 부산항 5.8%, 광양항 4%, 울산항 3.4%씩 늘었지만, 인천항은 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최근 3년 새 ‘쇠락세’가 더욱 격심했다. 5대 국가항만 가운데 2010~2012년 부산, 울산, 광양, 평택은 물동량이 연간 15.7~7.4%씩 성장했지만, 인천항은 되레 2.0%씩 줄었다. 물동량 기준으론 4위로 처졌다.

130년 전 개항한 인천항 내항과 북항·남항까지 더해 입항한 외항선은 2010년 9014척, 2011년 8356척, 2012년 7867척으로 해마다 5.9~7.3%씩 감소했다.

인천항 도선사인 이귀복 인천항발전협의회장은 “입항하는 선박이 크게 줄면서 도선사 수입도 급감했다. 20년 전엔 인천항 도선사들 수입이 전국 제일이었는데 지금은 도선구역이 있는 11개 항만 중에서 꼴찌가 됐다”고 말했다. 도선사는 배가 항만 도선구역에 들어오면 안전하게 부두까지 안내하는 일을 맡기 때문에, 항만의 경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다.

수출입 물품을 다루는 하역회사 선광의 정승우(48) 차장은 “인천항이 붐빌 때는 배들이 한 달 넘게 앞바다에서 기다렸고, 야간 작업을 거부하는 배는 다시 앞바다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갑문으로 입출항하는 외항선이 하루 20척도 안 된다”고 했다.

‘바다의 택시’ 통선은 아예 사라질 위기다. 입항 대기중인 외항선에 물건을 공급하거나 선원 상륙을 돕는 일을 하는데, 대기하는 선박이 거의 없어진 탓이다. 40년 넘게 통선업체에서 일해온 김영철(63)씨는 “한때는 30척 넘는 통선이 오갔다. 요즘은 하루 한 척쯤 운행한다”고 전했다.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 회장을 맡은 남흥우 인천선주협회 위원장은 “통선업체, 청소업체, 검수업체, 선사, 하역회사 등 인천항과 관련 있는 45개 업종의 많은 회사가 경영난에 빠져 있다. 인천항 물류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 영욕의 인천항 인천항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무대로서 숱한 사연을 머금고 있다. 1883년 1월1일 개항한 이후 인천은 조선의 관문으로 국제도시가 됐다. 월미도·송도엔 국내 첫 해수욕장이 생겼다. 인천항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을 통해 서울로 연결됐다. 개항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지금의 선린동에 정착했다. ‘국민음식’ 짜장면도 이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902년 12월엔 121명을 태운 하와이 이민선이 이곳에서 조선 땅을 떠났다.

김구 선생은 1911년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인천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쇠사슬에 묶인 채 인천항 축조공사에 동원됐다. 부두 하역, 쌀 운반 등에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부두 노동운동이 활발했다. 1924년 3월엔 여성노동자 300여명이 ‘한국 여성 업신여기는 일본인 감독을 바꾸라’며 파업을 했다. 일제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에 본격 나서면서 병참기지로서 군수물자 보급창 구실을 했다.

해방 뒤 1945년 9월 미군이 이곳을 통해 들어왔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항만시설이 대부분 파괴돼 1위를 부산항에 넘겨주었지만, 인천항은 수도권 관문 수출입항으로 다시 발돋움했다.

산업화 시대인 1974년엔 세계 최대 규모의 갑문 도크가 들어섰다. 서울·인천지역 공장에 원자재를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5만톤급과 1만톤급 선박이 24시간 입출항할 수 있게 하려는 설비였다. 인천항은 수입 화물을 실은 선박으로 붐볐고, 전라도·충청도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왔다.

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소련 선수단의 선박이 머물렀다. 옛소련, 중국과 수교한 90년대에 북방교역의 중심항으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의 중심항으로 떠오르며 전성기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 제2개항, 어떻게?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딴판이었다. 인천항이 쇠락하게 된 뒤에는 정부의 정책이 있다고 인천 지역사회는 지목한다. 정부가 수도권 과밀 억제를 내세워 부산항과 전남 광양항을 육성하면서 인천항의 손과 발이 묶였다는 것이다.

인천항에는 항만 기능의 핵심인 배후단지에 제조 및 가공업체가 들어설 수 없다. 항만 배후단지를 조성하는 데 정부는 부산·광양·평택항에는 50~100%를 지원하지만, 인천항엔 20~25%만 지원한다. 그 결과 배후단지 임대료도 다른 데 견줘 최고 6.5배나 비싸다. 선박 입·출항료, 창고야적장 사용료 등 항만시설 사용료도 20~40% 비싸다. 인천항에서 취급했던 양곡, 소맥, 방직용 섬유 등 수출입 화물을 평택항으로 돌린 연유다. 공장들도 이들 항만 주변으로 이전해가면서 원자재 수출입도 평택항으로 바꾸고 있다.

인하대 산학연구팀 조사 결과를 보면, 인천항이 항만 관련 산업에 끼치는 생산유발 효과가 12조5686억원으로 인천시 총생산의 33%를 차지한다. 취업유발 효과도 10만여명에 이른다. 인천항이 인구 290만명인 인천시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인천시와 인천항 관련 업계는 지난 1일 종사자 등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인천항 개항 130년 기념식을 열고 ‘인천 제2개항’을 선언했다. 130년 전 일제 강압에 밀린 개항이 아니라, 민관이 뭉쳐 침체된 인천항의 발전 방향을 스스로 찾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천항은 수도권 관문이고 중국과의 교류에 최적지라는 점을 들어 물류 중심 거점항, 해양수산 전진기지, 생태항만, 해양문화·관광항만으로 키우자는 등 다양한 제안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2014년 말 송도국제도시에 완공할 예정인 인천신항의 항로 수심을 14m에서 16m로 더 깊게 파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대형 컨테이너선박이 인천항에서 곧바로 미국·유럽으로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종길 해운물류학회장(성결대 교수)은 “선박 대형화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일본 고베항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부산항에 쏠린 수출입 물동량을 분담한다면, 수도권과 부산항을 오가는 육로 수송비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도 편다. 이상윤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북미·유럽 간선항로를 유치하고, 15만톤급 대형 크루즈선도 접안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에는 부산·광양·평택항과의 ‘차별’ 정책의 시정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 쪽은 “인천 지역사회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

김광석 인천시 항만공항물류국장은 “잘못된 관행과 비효율적인 절차는 고치되, 정부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 인천항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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