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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한복판에 친일파의 12필지, 570여평 ‘조각 땅’이 일제의 철심처럼 박혀 있다. 도심 도로에 편입돼, 이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는 지경이다. 이 땅이 뒤늦게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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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민영은의 토지대장을 열었다. 점점이 박힌 그의 땅을 선으로 이었더니 얼핏 일본 지도를 닮았다. 우연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땅 취득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 민영은, 땅을 사다 1911년 11월18일 충청북도 참사(도지사 자문위원)였던 민영은은 청주시 남주동 우시장 옆 땅(3.3㎡)을 샀다. 일주일 뒤 500m 남짓 떨어진 우체국 옆 땅(55.2㎡)을 사고, 다음날 200m 남짓 떨어진 서문동의 땅(3.6㎡)을 또 취득했다.
1913~18년 충청북도 토지조사위원회 위원을 지낸 그는 1913년 9월28일 청주시 북문로 청주중학교 후문 동쪽의 땅(796㎡)을 산 뒤, 이듬해 1월20일 지금의 명장사 앞 땅 4필지(37㎡)를 취득하고 이틀 뒤 청주중 정문 앞 땅(709.8㎡)까지 사들인다. 17년 7월엔 청주에서 가장 번화했던 상당 네거리 근처 땅(58.2㎡)까지 취득한다. 1919년 12월2일엔 중앙초등학교 남쪽 땅(198.3㎡)을 산 뒤, 충청흥업 사장이던 1920년 8월5일 상당 네거리 근처 땅(33㎡)을 또 사들였다.
1912년부터 만들어진 청주시 <토지 사정부>에 남아 있는 민영은의 토지취득 내용이다. 모두 12필지 1894.4㎡(573.18평)로 1㎞ 반경 안에 점처럼 흩어져 있다. 이곳에는 모두 도로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청주 최도심으로 차량과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곳들이다.
민영은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 안에 든 충북지역 대표적 친일파였다. 하지만 그가 소유한 땅은 국가 환수를 피해갔다. 당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은이 일제가 준 직위(1924년 중추원 참의)를 받기 전에 취득한 땅이어서 환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 그는 왜, 어떻게 땅을 샀을까 민영은이 왜, 어떻게 1~200여평에 이르는 ‘조각 땅’을 샀는지 알 수 없다. 기록이라고는 <토지 사정부>가 유일하다. 민영은도, 땅을 상속받은 그의 아들도 숨졌고, 손자녀들은 미국·서울 등으로 흩어졌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시대 토지대장 <양안>을 토대로 1912년부터 토지 사정부를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청주지역 토지를 기록한 <양안>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민간의 땅문서와 자기 땅이라는 주장 등으로 토지 소유를 확정하면서 오류가 많았다”고 말했다. 어윤숙 청주시청 도로시설과 보상담당은 “유일한 근거인 토지 사정부 기록만 보면, 시장·군수 등을 지냈고 6년여 동안 토지조사위원이었던 그가 주변의 땅을 틈틈이 취득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1평 남짓한 자투리땅까지 산 것을 보면 토지 정보에 매우 근접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우 전 충북도 기획관리실장이 낸 <도정 반세기>(1996)를 보면 민영은의 아들이 129.6정보(38만8000여평), 민영은이 세운 은성장학회가 88.2정보(26만4000여평), 민영은의 장손자가 105.5정보(31만6000여평) 등의 땅을 가지고 있었다. 민영은과 일가는 대단한 땅부자였다. 김성진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사무국장은 “민영은 일가는 친일 행각 과정에서 400정보에 이르는 땅을 모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청주 당산 등 일부만 친일재산으로 환수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가 세상을 뜨고 후손들도 청주를 떠나면서 나머지 땅은 대부분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 죽은 줄 알았던 땅이 살아났다 미국 등지에 사는 민영은의 다섯 후손이 민영은의 땅을 깨웠다. 이들은 2011년 청주시를 상대로 ‘도로 철거 및 인도 소송’을 냈다. 민영은이 1911~20년 사들인 청주 도심 12필지 570여평에 건설된 도로를 철거하고 땅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청주지법 민사4단독 김재규 판사는 지난해 11월 “청주시가 타인(민영은) 소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유했다. 도로를 철거하고 인도할 의무가 있다. 무단 점용 부당이득금 2억3100여만원과 인도가 마무리될 때까지 매달 178만원을 지급하라”며 민영은 후손들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 뒤 청주 시민들이 일어났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 등은 지난 3월 ‘친일파 민영은 후손의 토지 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충북대 학생 등 시민 1만2000여명이 지지 서명했다. 손현준 대책위 상임대표는 “후손들의 토지 반환 소송은 역사 정의와 국민 정서에 역행하는 행태다. 소송을 접고 땅을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1심에서 패소한 청주시는 민영은이 친일 행각으로 땅을 모았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국가기록원까지 가 그의 친일 행적과 관련 토지 매입의 연결 고리를 찾고 있다. 청주시는 7일 열린 항소심에서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기념 표창자 명감>(1935년 발간)에 민영은이 조선인 350명의 표창자에 끼어 있는 자료를 냈다. 자료에는 “민영은은 1905년 6월 조선식산은행의 전신인 충주농공은행 설립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새 정부에 대해 이해가 깊다. 통치상 온 힘과 마음을 다한 공적이 매우 현저하다”고 씌어 있다. 조선총독부가 민영은을 친일 인사로 인증하는 부분이다.
문제의 12필지 땅은 공시지가로는 3억7352만5000원이다. 하지만 학교·영화관·관공서·기업체 등을 잇는 중요한 도로여서 보상값은 수십억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많다. 청주지법 민사부(재판장 이영욱)는 7일 청주시에 “도로 수용에 따른 매수나 조정안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다음 재판은 다음달 16일 열린다. 김성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시민들의 땅을 빼앗기거나 세금을 안겨줄 수 없다. 시민운동으로 막겠다”고 말했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학자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을 제대로 규정하고 친일 환수 재산의 범위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부와 학계에 친일파들의 친일 행각을 다시 세세하게 살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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