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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야생화축제·복지관…‘주민참여’ 보폭 넓힌다

등록 2013-05-26 22:14수정 2013-05-27 08:43

서울 은평구 경로당 어르신들이 재배한 콩나물로 국밥을 만들어 파는 ‘은평꼬부랑 콩나물 국밥집’ 식당에서 지난 24일 오후 직원들이 국밥을 나르고 있다. 은평구 제공
서울 은평구 경로당 어르신들이 재배한 콩나물로 국밥을 만들어 파는 ‘은평꼬부랑 콩나물 국밥집’ 식당에서 지난 24일 오후 직원들이 국밥을 나르고 있다. 은평구 제공
[수도권 쏙]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주민참여예산제가 의무화된 지 세해째에 접어들었다. 주민 자치 수준과 삶의 질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일각에선 성과도 보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달 29일 서울 은평구청 옆에 ‘은평꼬부랑’이란 콩나물 국밥집이 문을 열었다. 개업식에 김우영 은평구청장과 구의원들이 두루 참석했다. 김 구청장은 “지역경제를 살릴 큰 사업”이라며 치켜세웠다. 국밥집에 무슨 ‘거창한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시작은 ‘매바위 마을공동체’의 엉뚱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이 마을공동체는 은평구 응암2동 주민자치회와 부녀회 등이 중심인데, 경로당 어르신들이 콩나물을 기르는 걸 보고 고민에 빠졌다. 콩나물의 안정적인 판로가 없을까? 국밥집을 하자, 주민참여예산제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뒤따랐다. 은평구를 통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신청해 2억3000만원의 예산을 받아냈다. 어르신들 일자리도 생기고, 어르신들이 싼값에 국밥집에서 식사도 할 수 있게 됐으니 일석이조다.

경로당 재배 콩나물로 식당 열어
노인고용 창출에 식사 싼값 제공
축제 등 공동체 문화행사 만들고
장애인 직업체험 교육관도 설립

‘경제·복지’ 두 마리 토끼 잡기
지역 문제 환기시키는 효과도

주민참여예산제

주민들이 직접 예산 편성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시가 처음 도입한 뒤 전세계로 번졌고, 우리나라에선 2004년 3월 광주광역시 북구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2011년 8월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은 이 제도를 시행하도록 제도화됐다.

매바위 마을공동체의 송영흠(53) 대표는 “매달 10만~15만원의 경로당 운영비를 지원하는 등 국밥집 수익의 3분의 2를 사회적 목적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국밥집엔 취약층 8명이 일한다. 포장·납품을 위해 어르신 4명을 더 고용할 계획이다. 송 대표는 “주민참여예산제가 없었다면 출자금 모금 등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21일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3동 운곡공원에서 비산3동의 옛 지명을 딴 ‘날뫼 야생화 축제’가 열렸다. 12종 3만포기가 넘는 야생화가 시민들을 맞았다. 축제 준비에 1억원이 들었는데, 역시 시민들이 안양시에 주민참여예산제를 통해 제안하고 시가 이를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주민들은 이 야생화 축제를 지역의 대표 문화예술행사로 가꿔갈 계획이다.

올해로 시행 2년째를 맞은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서울에선 지난해 5월 관련 조례를 제정해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늦게 제도 시행에 들어갔지만 조금씩 정착해가고 있다. 지난해 150명을 뽑는 주민참여예산위원 공모에 1664명이 응모했고, 올해는 127명 모집에 1383명이 몰렸다. 외국인, 은퇴자들도 눈에 띈다.

2010년부터 한국에 살았다는 일본인 무로야마 도카(32)는 “대학에서 국제개발을 전공하면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처음 접하고, 서울시 예산위원에 지원했다. 사업 선정 때 자치구끼리 경쟁하는 분위기도 있던데, 외국인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오래 일했다는 권문야(71)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활동한다. 권씨는 “지난해엔 9월에 예산 한마당을 열었다. 급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올해는 더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산 500억원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편성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올해 예산사업 가운데 24건 638억원을 주민참여로 편성했는데, 지난해 23건 136억원에서 4배 이상 늘린 규모다.

초기에 토목·건설 쪽에 쏠렸던 주민 제안사업의 내용도 다양화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는 올해 ‘장애인 직업체험 교육관’ 설립에 8억300만원의 예산을 주민 제안으로 편성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장애인·교육·여성 등의 분과회의를 둬 얻어낸 결과다. 서대문구 주민참여예산 담당 김선희 주무관은 “장애 청소년들은 고교 졸업 뒤 자립을 돕는 사회적 장치가 전무하다. 장애분과 위원으로 참여한 장애 청소년 학부모가 주민참여예산위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역 문제에 주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계기도 된다. 서울 종로구 화동 고갯길 평탄화 사업이 대표적이다. 주민 제안으로 추진됐지만 주민 2000여명이 반대 서명을 했고, 지난달 초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옛길의 멋을 잃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냈다. 화동 고갯길이 큰 화제가 되면서 종로구는 여러 차례 설명회와 토론회를 열었고, 주민들은 북촌 전체의 개발·보전에 대한 ‘건강한 고민’을 시작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조금씩 진화·발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다른 광역자치단체와 달리 시민단체·집행부·시의회 등이 협의하는 ‘참여예산지원협의회’를 설치해 제도 운용의 개선점을 논의하고 있다. 은평구는 전국 최초로 주민 제안사업 선정을 위한 구민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 손종필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예산위원장은 “서울시 예산편성권의 일부를 시민들에게 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민들 의견을 반영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용 김기성 홍용덕 정태우 기자 xeno@hani.co.kr


도입 3년 드러난 문제는

시간 부족한 주민들엔 ‘남의 일’
전문성 약한 예산위원 ‘거수기’

주민참여예산제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시행 초기여서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설적으로 ‘주민 참여의 부족’이라는 점에 전문가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수십년 동안 시정·구정에 간여한 이들이 통·반장이나 관변 단체 회원들로 국한돼왔기에 초기엔 이들이 앞장설 가능성이 크다. 참여 경험이 거의 없는데다, 직장 생활 등으로 시간도 부족한 주민들에게 ‘딴 동네 이야기’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모바일 투표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지만 절대다수 주민들의 참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주민참여예산위원도 “예산위원들이 처음엔 대부분 기존의 관 사업에 연계됐던 인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첫해 사업의 90%가 건설 쪽이었다”고 말했다.

의욕을 갖고 참여예산위원으로 나서도 녹록지 않다. 관공서의 서류를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데, 자칫 ‘거수기’가 되기 쉽다. 참여예산위원들의 경험 축적과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주민참여예산제로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 주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참여 예산의 규모가 아직은 작다. 기초자치단체 대부분이 광역단체에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실정이라 운신 폭이 매우 좁다. 은평구에선 지난해 주민 총회까지 거쳐 선정한 32개의 주민 제안사업 가운데 17개 사업에만 예산이 배정됐다.

기득권 구조가 제도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 지방의회 쪽은 자신의 고유 권한인 예산 심의 및 의결 권한을 침해한다고 못마땅해한다. 주민제안 사업의 예산을 삭감하는 경우가 잦다.

주민참여예산위원의 권한 범위를 정립하는 것도 과제다. 경기도의 남상중 재정발전전략팀장은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의 권한 이양 요구가 늘고 있다. 예산 편성권은 광역자치단체에, 심의권은 광역의회에 있어 요구에 맞추기 쉽지 않다. 참여 절차를 개선하고 주민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창현 홍용덕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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