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의 청년 3인방 현창곤(왼쪽부터)·강준희·전희수씨가 8일 오후 강씨 집 마당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인하대 85학번 동기인 이들은 도시생활을 접고 이곳에서 공동체 마을을 키워나가고 있다.
[한겨레 창간 24돌 특집] 탈출! 피로사회
빌딩숲에서 나와 진짜 숲으로
내비에도 안나오는 곳 35가구
스트레스·희귀병 시름도 훌훌
“자연속 느긋한 삶의 힘 놀라워”
빌딩숲에서 나와 진짜 숲으로
내비에도 안나오는 곳 35가구
스트레스·희귀병 시름도 훌훌
“자연속 느긋한 삶의 힘 놀라워”
충북 괴산군 괴산읍내를 지나 호젓한 괴강길을 따라 20분 남짓 달리면 칠성면 사은리다. 산쪽 좁은 길로 3~4㎞쯤 지나니 내비게이션에서 ‘경로 이탈’ 안내음이 나온다. 체념한 채 더 달렸더니 산 아래에 세상에서 이탈한 듯한 마을이 나타났다. 벼슬아치들이 세상을 피해 칡뿌리로 연명하며 숨어지냈다는 옛 마을 이름처럼, 고즈넉하면서도 안온한 느낌을 준다. 뒤로 군자산(948m)·옥녀봉(604m)이 병풍을 펼치고 앞으로는 달천이 흐른다.
미루마을이다. 마을 어귀 뿌리 깊은 네 그루 미루나무에서 따온 이름이 정겹다. 미루나무와 벗한 조각구름이 노니는 마을에 사람이 얹혀사는 듯하다.
논밭뿐이던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2007년 인천 인하대 동문들이 공동체 전원마을을 꾸미면서다. 인하대 동문 등 35가구 100여명이 깃들었다. 원영무(78) 전 인하대 총장은 마을 촌장을 맡았고, 케이티(KT) 상무로 일하다 퇴직한 곽노관(53)씨가 이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전·현직 회사원, 교수, 사업가, 자영업자 등이 옮겨왔고, 20여가구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마을 청년 3인방’ 전희수·강준희·현창곤씨가 8일 오후 강씨 집 마당 카페에 모였다. 셋은 인천대 ‘85학번’ 동기로 학생운동을 함께 한 동지였던 인연을 이웃으로 이었다. 광고 기획일을 접고 2009년 귀농한 현씨는 “돈은 벌리지만 삶의 질은 낮아지고, 스트레스에 찌들어 인간성을 잃고 싸움닭으로 변해가는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며 “느리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일구련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누리망으로 선박 중계 일을 계속하는 강씨는 “빌딩 숲에서 진짜 숲으로 터전을 옮겼더니 일도 잘되고 훨씬 더 많이 웃고 젊게 산다”고 했다.
도시 탈출은 몸과 마음에 아름다운 변화를 선물했다. 희귀병 때문에 문턱이 닳도록 병원 신세를 지고 미국에서 요양도 했던 임준혁(18)군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눈에 띄게 나아졌다. 어머니 박경애(53)씨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갑자기 의식을 놓치는 경기 증세로 고생했던 준혁이가 여기 온 뒤론 딱 한번 감기에 걸렸을 뿐”이라며 “잠시도 곁에서 떨어질 수 없었는데, 지금은 마실까지 다닐 수 있게 돼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입안에 염증이 사라지지 않는 희귀질환을 앓았던 탁영숙(51)씨도 “다달이 두 차례씩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지난해 6월 이곳으로 온 뒤 약을 먹지 않게 됐다”며 “좋은 공기, 느긋한 일상의 힘에 스스로 놀란다”고 거들었다.
나날의 삶도 달라졌다. 태양광·지열을 활용하는 ‘탄소 제로’ 마을을 지향하면서 자연에 다가가고 있다. 닫아뒀던 방문을 열면서 마음의 문도 함께 열었다. 어버이날엔 마을 어르신 5명에게 꽃바구니와 함께 뙤약볕을 가릴 밀짚모자를 드렸다. 곽경화(41)씨는 “자꾸 주고, 나누고,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좋다”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 아파트 문 꽉 닫고, 맘 닫고 재미없게는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함께 어울리고 먹고사는 길도 연구중이다. 어귀에 1650㎡(500평) 마을 공동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생태요리연구가인 문성희씨 등과 함께 탐방객들에게 생태요리를 선보일 참이다. 토박이 농민과 함께 유기농 잡곡·채소·과일 등을 길러 도시민에게 공동 출하하는 방안도 준비중이다. 원 촌장은 “내 손으로 집과 마을을 일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즐겁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며 “마을에서 받은 생기를 도시민들과 고스란히 나누려 한다”고 말했다.
괴산/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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