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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캐고 집 짓고 일기 띄우고…지리산 품에 포옥~

등록 2012-05-15 09:57수정 2012-05-15 10:08

[한겨레 창간 24돌 특집] 탈출! 피로사회

웹디자이너·출판편집자…
알음알음 산자락에 네 부부
다음달엔 카페·손님집 개관
“잔머리 안굴리고 잘삽니다”
큰 산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도시에서도 마음은 항상 산을 향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나고 자란 김서곤(50)씨는 서울에서 통신사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199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대 대학원에서 정보학을 공부하던 김씨는 지리산을 매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지리산닷컴’(jirisan.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해뒀다. 1996년 잠깐 귀국해 간호사였던 노정애(49)씨와 결혼했다. 부부는 2002년 귀국해 지리산 문수골로 들어가 산나물을 재배했다. 농장 어귀엔 ‘산에사네’라는 문패를 달았다. 지난해 7월 조선시대 전통가옥인 ‘운조루’가 있는 토지면 오미리로 이사할 때까지 큰 산 품에서 살았다.

김씨는 네팔과 북인도를 여행하면서 정신까지 파고드는 놋쇠그릇의 미묘한 소리를 듣고는 치유 공동체를 떠올렸다. 지인과의 인연으로 만난 웹디자이너 권산(49)씨를 찾아갔다. 부산 출신인 권씨도 2006년 5월 말 아내 이언화(44)씨와 오미리 인근 마산면 상사마을로 옮겨왔다. 빈집을 고쳐 지내면서 웹디자인 일을 계속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복선이 없어요.(웃음) 원색적이지요. 잔머리 안 굴려도 되고, 전략 없이 액면가 그대로 살아도 되니까 좋습니다.” 2007년 8월 지리산닷컴에 ‘마을이장’이란 이름으로 농촌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편지를 띄우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 이야기는 2010년 9월 책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에 담겼다.

보리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던 윤은주(37)씨도 지리산을 걷다가 큰 산의 품에 스며들었다. 2009년 3월 평소 다짐대로 10년 만에 사표를 내자,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 박용석(39)씨도 그만뒀다. “마누라 혼자 노는 꼴을 볼 수 없었죠.(웃음) 시골에 살고 싶었다기보다 도시를 떠나고 싶었어요.”

훌쩍 동남아로 여행을 떠난 이들은 중국 윈난성 해발 3000m의 협곡에 지어진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다. ‘이렇게 살면 참 좋겠다….’ 귀국해 지리산을 걷던 부부는 지인의 소개로 권씨를 만났다. 남편 박씨는 권씨의 권유로 2010년 1월 100만원 월급을 받는 마산면 상사마을 ‘녹색농촌 체험마을 사무장’으로 채용되자 귀촌을 결행했다. “50대 형님들과 술 마시고 ‘개가 되면서’ 친해졌어요.(웃음) 숫자를 세는 ‘산수’를 해야 했던 일에서 풀려나 스트레스도 줄었어요. 읍내 장에서 3~4명이 알은체를 할 때면 여기서 산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해요. 도시에선 사람들과 스쳐가듯 만나잖아요.”

경기도 하남에서 살면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신성호(40)씨도 지리산닷컴과의 인연에 얽혔다. 지난해 10월 지리산닷컴이 주최한 ‘쌀밥에 고깃국 그리고 이야기’라는 소모임에 참가했다가 두달 뒤 귀농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아내도 지리산행을 준비중이다. “귀촌이 아니라 귀농했다”는 신씨는 마을 사무장으로 일하는 틈틈이 트랙터 운전을 배워 논을 갈아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엄니들 때문에 웃게 돼요. 경로당에서 ‘몇 살?’ 물어보시곤 ‘애기네’ 하세요. 영계가 됐지요. 문고리와 수도꼭지만 고쳐줘도 인기 ‘짱’이에요. 할머니들 장에 가실 때 차에 태워드리거나, 공과금 고지서 읽어드리면 정말 고마워하세요. 그러고 작지만 뭔가를 주시려고 하십니다. 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신씨는 지리산닷컴의 프로젝트 ‘맨땅에 펀드’ 책임자이기도 하다. 도시민 100명에게 30만원씩을 투자받은 자금으로 논을 빌려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연 7~8차례 배당금 형식으로 건네고, 남은 농산물을 팔아 이익금이 남을 경우에만 공평하게 배당해주는 ‘맨땅 상품’이다. “다들 돈 30만원 내버릴 마음 먹고 투자한 분들이죠.(웃음) 50~60년 농사를 지어온 지정댁, 대평댁, 금강댁, 남원댁, 지아 엄마, 박샌, 최샌 등이 펀드매니저랍니다.” 지리산닷컴은 다음달 운조루 옆에 ‘카페 & 게스트하우스’를 연다. 갈대와 흙을 섞어 지은 집엔 카페와 방 2개를 마련한다. 박씨 부부가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책임지기로 했다.

지리산 왕시루봉과 광양 백운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운조루 뒷산(해발 600m) 3만여평을 빌려뒀다. 쉼터로 15평짜리 너와집을 짓고 있는 김서곤 지리산닷컴 대표는 “분단 모순과 동서 갈등을 푸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치유의 공동체를 이곳에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례/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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