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전 대구시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대구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해 행정대집행을 하는 공무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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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의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엔 주요 대도시의 자치단체장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배제를 강화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이다.
서울시가 지난 3일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 데 이어, 12일 인천시는 인천여성영화제가 편성한 상영 프로그램에서 퀴어영화를 빼라고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17일에는 퀴어문화축제가 진행된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행사장 철거를 위해 나온 대구시 공무원들과 철거를 막으려는 경찰이 충돌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빚어졌다. 세 광역자치단체의 단체장은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17일 대구 상황은 대구시와 중구청 소속 공무원 500여명이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퀴어축제 행사장에 대해 ‘행정대집행’(철거)을 하러 나오면서 빚어졌다. 경찰은 집회 신고가 된 합법적 행사인 만큼, 질서 유지와 참가자 보호를 위해 큰 충돌을 빚을지 모를 지자체의 행정대집행 돌입을 차단하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퀴어 축제는 적법하게 신고 수리되어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행정대집행을 하는) 정당한 사유는 될 수 없다. 도로법 제74조 행정대집행의 적용 특례를 보면, 반복적이고 상습적으로 도로를 점용하는 경우나, 도로 통행 및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하게 필요한 조처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는데,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과 행정당국의 대치는 행사 시작 직전인 낮 12시께 공무원들이 스스로 떠나면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시 공무원들의 공무 집행을 억압해 방해하고 공무원을 다치게 하고 공공도로를 무단으로 막고 퀴어들의 파티장을 열어준 대구 경찰청장은 대구시 치안 행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집회, 시위 신고만 있다면 집회 제한 구역이라도 도로점용 허가 없이 교통을 차단하고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열어준다면 대한민국 대도시 혼란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며 퀴어축제에 대한 자신의 행정대집행 지시가 정당했음을 강조했다.
퀴어행사의 수난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국민의힘과 소속 정치인들은 주기적으로 ‘동성애 반대’ ‘퀴어축제 불허’ 등을 공언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왔다. 이들의 행태가 철저하게 ‘표’를 의식한 행동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하는 집단은 보수 개신교단과 이 교단에 소속된 대형 교회들이다. 이들은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머릿수’를 앞세워 ‘동성애 반대’를 공약화할 것을 정당과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서울과 대구 등에서 보인 보수 지자체장들의 행보가 대단히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라며 “정당 정체성이나 지지층 결집이라는 선거 전략 측면에서 보면 (퀴어행사를 불허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고 했다.
주목할 점은 이 단체장들이 성소수자 문제와 무관한 종교 이슈에 대해선 대체로 관용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경북대 서문 인근에서 2년 넘게 이어지는 이슬람사원 건립 갈등 문제에 대해선 “자신의 종교가 존중을 받으려면 타인의 종교를 폄훼하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며 사원 건립을 방해하는 지역 주민과 일부 극단적 개신교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 시장이 강조한 ‘인정’과 ‘관용’은 성소수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가치라는 사실이 이번 대구 퀴어축제 행정대집행 시도에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이 이날 낸 논평도 홍 시장의 이런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논평에서 “이슬람사원 건립을 찬성하면서 기독교의 교리가 ‘사랑’이라며 모든 종교를 포용하자고 한 사람이 퀴어축제에는 ‘사랑’은커녕 ‘미움’만 가득하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고 꼬집었다.
‘홍준표식 관용’의 이중성이 ‘표’ 때문이란 사실은 그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홍 시장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특정 사이비 기독교 세력들로 보고를 받았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이슬람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연락 왔다”고 썼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올해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행사 반대에 앞장섰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통치 실패를 바깥의 적이나 내부의 소수자에게 전가해 정치적 궁지를 벗어나려는 우파 포퓰리즘의 관성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며 “연대의 힘으로, 무분별한 증오와 혐오의 정치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현 박다해 이승욱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