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은 개를 사용하는 동물실험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종이다. 과학자들은 크기가 중형이고 온순한 성격이라 다루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1. 지난해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이병천 교수가 실험을 위해 개농장에서 도사견을 사서 난자를 채취한 후 다시 개농장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쪽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다. 윤리위원회에는 동물보호단체 추천위원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2. 국내 수의과대학은 15만~20만원을 주고 사 온 잡종견으로 실습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교수는 “윤리위원회 심의를 거쳤다. 매년 같은 실험을 해왔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심의를 통과한다”며 위법은 아니라고 강조했다.(한겨레 4월2일치 19면)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법적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실험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곳이다. 전국의 370개 학교, 제약회사 등 동물실험 시행기관은 모두 윤리위원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실험기관이라면 실험동물법에 따라 실험동물운영위원회로 대체할 수 있다.)
윤리위원회에서는 제출된 실험계획이 대체시험법이 있는지, 사용하는 동물의 숫자가 적당한지, 고통 정도가 강하지 않은지 등을 심의하고 실험을 허락할지를 결정한다. 만약 위원회 승인을 받지 않고 실험하면 법 위반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제대로 된 연구 결과물로 인정받지 못한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윤리위원회 승인이 없으면 무효가 된다.
3~15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는 반드시 외부인이 3분의 1 이상이어야 한다. 또 수의사, 동물보호단체나 민간단체가 추천한 동물 보호·복지 관계자, 동물실험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객관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위원회의 법적 지위나 권한에 비해 동물복지 측면에서 신뢰성은 위의 사례에서 보듯 높지 않다. 서울대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재학 수의대 교수조차 “개선할 점이 많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동물단체와의 소통 부족도 그중 하나다. 동물단체, 정부, 학계가 모여 토론회를 열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한 동물단체 대표는 윤리위원회를 “(연구자 뜻에 따르는) 사실상 거수기”라고 평가했다. 형식적으로는 동물단체도 위원회에 함께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배제됐다는 것이다. 동물단체 추천으로 윤리위원을 맡고 있는 한 원로 학자는 “민간 추천인을 둔 이유가 과학자의 결정을 다르게 바라보라는 뜻일 텐데, 그래 봤자 소수의견에 그칠 때가 많다. 견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견 채택은 참석 위원의 과반이 기준인데, 한 명이 참석한다고 해도 ‘복지’가 강조될 환경은 아니란 의미다.
실험동물의 복지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학계와 동물보호단체는 지속적으로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애니멀피플이 정보공개청구로 농림축산검역본부를 통해 받은 ‘국립대학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승인율’을 봐도 연구자에게 우호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자가 제출한 실험계획(원안) 그대로 통과된 비율이 강원대 100%(95건 중 95건), 서울대 95.5%(1556건 중 1486건), 전북대 85.2%(115건 중 98건), 경상대 76.3%(76건 중 58건), 충북대 70.1%(134건 중 94건) 등으로 높았다. 가장 낮은 전남대는 19.1%(68건 중 13건)였다. 하지만 수정 후 재심의 결과까지 확인하면 2426건 중 4건의 실험만 불가 판정을 받았다. 수의사인 한 윤리위원은 “윤리위원회는 연구자가 실험을 (윤리적 문제 없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기구”라고 설명했다.
동물단체들은 윤리위원회에 추천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애니멀피플’이 농림축산검역본부로부터 받은 지난달 기준 국립대학 9곳의 윤리위원회 위원 93명의 소속을 확인해보니 동물단체 관련자로 보이는 이는 3명(2개 단체)뿐이었다.
동물단체 추천을 받은 한 과학자는 “동물실험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동물실험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동물복지나 보호를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마땅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이 여러 기관의 위원직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윤리위원회 설치가 법으로 지정된 2008년께 위원을 추천하다 지금은 중단했다는 한 동물단체 활동가는 “단체로선 웬만한 동물실험은 찬성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위원을 한다고 해도 (과학자와 활동가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소통이 안 되고 소외된다. 결국 위원회에 추천하는 사람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과학자나 동물단체나 실험동물 ‘복지’ 전문가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같이한다. 박재학 서울대 위원회 위원장은 “윤리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도 이수해야 할 필수교육이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나 학교가 비과학자들도 동물실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는 “위원회에 가서 무조건적인 반대만 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동안 동물단체가 신념이나 정서, 지식의 한계 때문에 위원회 참여를 회피해왔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동물단체 대표의 위원회 참석이 의무다.
장기적으로는 과학자들 스스로 동물실험을 줄이고 대체시험법을 개발하려는 학계의 분위기도 조성되어야 한다. 서보라미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한국 정책국장은 “국내에서는 아직 돈이 많이 들어가는 대체시험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물실험을 ‘훨씬’ 선호한다. 관행이 됐다. 동물실험을 안 한다고 하면 업계에서 ‘튀는 사람’이 되는데 이것도 연구자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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