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평균 1400여 마리 경주마가 은퇴하지만 이 가운데 승마·관상·교육 등으로 재활용 되는 말의 비율은 42%에 그쳤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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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넘어진 말이 은퇴 경주마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한해 퇴역 경주마 절반은 질병·부상 등의 이유로 도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단체 동물자유연대와 제주비건은 22일 성명서를 내고 퇴역 경주마의 복지 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단 몇 초간의 연출을 위해 죽은 말이 은퇴한 경주마였다니 비참한 삶과 죽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까미
’의 죽음은 한국 경주마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잔인하게 구성되는지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21일 애니멀피플의 취재 결과,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의 말이 퇴역 경주마 ‘까미’인 것으로 밝혀졌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에 동원됐다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말은 퇴역한 경주마였다.
이들은 “2019년 경주마 학대 사건 이후 마사회는 ‘한국마사회 말 복지 가이드라인’ 등을 개정하고 말 이력제를 도입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경주마 퇴사 시 신고 기준 정확성은 낮아지고, 용도 변경 추적 관리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9년 제주에서는 경기를 마친 지
3일 만에 도축장에 실려와 폭행 당하고 도살된 경주마들의 모습이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PETA)의 폭로로 드러난 바 있다.
단체들에 따르면, 퇴역 경주마인 서러브레드(Thoroughbred) 품종의 말은 2016~2020년 5년간 연 평균 약 1400마리가 은퇴하고 있다. 이 중 42.2%가 퇴역 이후 다른 용도로 재활용(관상, 교육, 번식, 승용)되며, 48.1%는 질병·부상 등으로 안락사나 도살된다. 그 외 기타 용도에 속하는 9.7%는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2019년 국제동물권단체 페타(PETA)는 제주시 애월읍 축협축산물공판장 앞에서 경주마들이 경주를 마친지 3일 만에 도축되는 현실을 폭로했다. 페타 제공
재활용으로 구분되는 말들 중 승용마는 약 500마리이며, 그 외의 말들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말 이력제는 경주마로 활용될 때 효력이 있지만 퇴역 이후에는 추적 가능한 관리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퇴역 이후 말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기타 용도의 비율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이 한국마사회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퇴역 이후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기타 용도의 비율은 2016년 5%(70마리)에서 2017년 6.4%(89마리), 2018년 7.1%(99마리), 2019년 7.4%(103마리), 2020년 22.5%(308마리)로 늘었다. 2020년 용도 미정으로 구분된 퇴역마는 308마리로 급증했지만, 말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자료가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제주에서는
‘퇴역경주마 펫사료화’ 방안을 검토했다가 동물단체, 지역환경단체에 반대에 부딪혀 취소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경주마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브리더스컵 클래식 경주대회에 한국마사회의 퇴역 경주마 정책을 비판하는 손팻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날 경주에서는 한국마사회 소속 경주마 ‘닉스고’가 한국 최초로 브리더스컵 우승을 기록했다. 페타 제공
현재 경주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러브레드 종의 평균 수명은 25~35살이지만, 은퇴 시기는 2~4살 가량이다. 이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 뒤 사망한 ‘까미’도 4~5살까지 경주마 생활을 하고 지난해 말 대여업체로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체들은 “경주마의 잔혹한 삶을 사회에 드러낸 ‘까미’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을 위해 달리다 고작 3~4살 나이에 도축되는 경주마의 현실을 되새기며, 경주마의 전 생애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매년 경마로 8조원의 수입을 벌어들이는 한국마사회 역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