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말이 몸이 바닥으로 아찔하게 고꾸라지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송돼 논란이 되고 있다.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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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말이 바닥으로 아찔하게 고꾸라지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송돼 논란이 되고 있다.
19일 동물자유연대는 ‘동물 연출 안전 기준 부재한 KBS의 변화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고 드라마 촬영을 위해 넘어지고 쓰러지는 말의 안전과 복지가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해당 방송에 출연한 말이 심각한 위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 큰 우려를 표한다”면서 “말의 현재 상태를 공개하고 더불어 촬영 당시 장면이 담긴 원본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문제가 된 장면은 지난 1월1일 방송된 ‘태종 이방원’ 7화에서 나왔다.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김영철이 말을 타고 산속을 달리다가 무언가에 걸려 고꾸라지며 말에서 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달리던 말의 몸체가 90도 가량 뒤집히며 머리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모습이 연출됐다.
논란은 이를 장면을 본 한 시청자가 지난 17일 KBS 누리집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 해당 말의 안전을 확인해달라는
청원을 게시하며 알려졌다. 이 시청자는 게시글에서 “여기 나오는 말들은 어떻게 관리가 되는건지 뼈가 다 드러나보이고 앙상하다. 이성계 낙마 장면에서도 말이 땅에 완전히 꽂히는 모습이었다. 말을 강압적으로 조정하지 않고서야 저 자세가 나올 수 없다”며 말 다리를 묶고 촬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동물자유연대는 “방송 촬영에 이용되는 동물의 안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아니다. 특히 사극에 등장하는 말은 발목에 낚시줄을 휘감아 채는 방법으로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같은 연출은 동물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단체에 따르면, KBS ‘방송 제작 가이드라인’의 윤리 강령 중 동물에 관한 규정은 자연이나 야생동물을 촬영할 때의 주의사항 등 일반적인 내용만 있을 뿐 ‘동물 배우’의 안전이나 복지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 최근 동물 복지 인식이 높아지고, 컴퓨터 그래픽·모형 사용 등 촬영 기술이 발전되고 있음에도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여전히 동물을 촬영 도구처럼 대한다는 지적이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공영방송인 KBS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동물을 ‘소품’ 취급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행태”라면서 “KBS 윤리 강령에 방송 촬영 시 동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 규정을 마련하고, 동물이 등장하는 방송을 촬영할 때에는 반드시 동물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도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말의 다리를 와이어로 묶어서 잡아당겼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오직 사람들의 오락을 위해 말의 생명을 위험에 고의로 빠뜨리는 행위는 동물을 해하는 전형적인 동물학대 행위”라고 비판했다.
영화 ‘경기병 여단의 돌격’(1936년)은 말들의 다리에 철사를 고의로 묶고 달리게 해 넘어지는 장면을 촬영했다. 카라 제공
카라에 따르면, 말 다리를 철사로 묶어 고의로 넘어뜨린 촬영방식은 90년 전인 1930년대 헐리우드에서 등장한 방식이다. 영화 ‘경기병 여단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1936년)에서 이러한 방식의 촬영 뒤 말 25마리가 죽었고, 이후 1939년에는 말이 절벽에서 추락하는 사망사건까지 발생하자 '미국인도주의협회'(AHA)가 미디어의 동물 출연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카라는 이번 촬영과 관련해 △동물 안전 확보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었나 △현장 사고 대처를 위한 수의사가 배치되었나 △낙마 장면 속 모든 말의 안위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는 지난 2020년 미디어에 출연하는 동물의 안전과 학대 방지를 위해 국내 최초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바 있다.
KBS쪽은 이와 관련해 “관련 내용을 제작진에 전달했고 현재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확인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