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극조사단의 연구선 어니스트 섀클턴 호가 남극에 정박해 있다. 선체 표면에는 수많은 생물이 부착해 이동한다. 로이드 페크 제공.
남극해는 아직 단 하나의 외래종도 발붙이지 못한 마지막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이다. 그러나 선체에 외래생물을 부착한 선박이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남극해에 드나들어 외래종 유입이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극지조사단과 케임브리지대 연구자들은 2014∼2018년 사이 남위 60도 이하로 항해한 선박의 기항 통지와 위성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세계 항구의 15%에 해당하는 1581개 항구에서 선박이 남극해로 항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남극은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뜻”이라며 “외래생물이 어디서든 남극 바다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11일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 적었다.
남극을 항해한 선박의 기항지와 항로. 북유럽, 남미 남부, 동아시아가 가장 잦다. 알리 매카시 외 (2022) PNAS 제공.
남극해에 외래종이 침입하지 못한 것은 대륙붕을 통해 다른 대륙과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대륙인 데다 남극 대륙 주변을 빙빙 도는 차가운 해류가 자연 방벽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수천만년 동안 고립된 결과 남극해에는 다른 바다에서 볼 수 없는 고유한 생물이 다수 서식한다.
데이비드 알드리지 교수는 “남극해의 고유종은 지난 1500만∼3000만년 동안 고립돼 있었기 때문에 침입종이 가장 큰 위협”이라며 “이들이 어장 붕괴 같은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예컨대 “선체에 붙어 옮겨온 홍합은 경쟁자가 없는 남극해 바닥을 뒤덮을 수 있고 게가 유입된다면 남극 생물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포식자가 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우려했다. 또 세계적으로 양식장의 사료나 건강식품의 기름 추출용으로 수요가 늘어난 크릴 어장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남극을 방문한 연구선에서 발견된 게. 유럽 해안에 서식하는 종으로 남극 환경에 적응하면 새로운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다. 알리 매카시 제공.
남극에서는 외래종 유입을 막기 위해 엄격한 검역을 한다. 선박 평형수 교체도 철저히 관리한다. 평형수는 화물을 싣기 전에 물을 버리면서 문제가 되지만 남극은 화물을 부리는 곳이어서 거의 문제가 안 된다. 연구자들은 “장기간 항해 동안 선체에 들러붙는 홍합, 따개비, 게, 조류 등 부착생물이 남극에서 오래 정박하면서 떨어져 나갈 우려가 큰데 이에 대한 규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로 온대바다에서 떠나 열대를 거쳐 남극해로 도달하는 여정을 대부분의 부착생물은 적응하지 못하지만 일부는 견디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선박을 통해 남극으로 유입된 생물이 지금까지 10종이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아직 남극에 정착한 종은 없지만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찬 바닷물이 이루던 천연 방벽이 허물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연구자들은 “외래종 위험이 가장 큰 20곳이 모두 남극해에서도 가장 기온이 높고 기후변화도 빠르게 진척되는 곳”이라고 밝혔다.
관광객이나 연구자를 태우고 북극의 여름을 보내고 곧바로 남극의 여름으로 향하는 선박이 적지 않다. 선체에 붙은 생물은 추위에 적응해 남극에서 쉽사리 침입종이 될 수 있다. 픽사베이 제공.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연구나 관광 목적으로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선박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북극의 여름을 보내고 대서양을 횡단해 곧바로 남극으로 항해하는 배의 부착생물은 남극해에 올 때 이미 추위에 적응한 상태여서 살아남을 확률이 커진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많은 배가 남극으로 출항한 지역은 북유럽과 남미 남부 그리고 동아시아로 나타났다. 남극까지 직항 항로를 갖춘 항구는 23개국 58곳에 이르렀다. 배는 주로 연구, 어업, 관광, 보급 목적이었다.
주저자인 알리 매카시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은 “선체를 세척하는 등 남극의 생물 안전성을 위한 규제는 현재 몇몇 관문 항구에서만 이뤄지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해양온도가 계속 오르고 있는 만큼 외래종이 남극해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생물안전과 환경보호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211030311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