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독사의 하나인 크레이트는 자는 사람을 물어도 아무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한다. 볼프강 뷔스터 제공.
세계에서 한 해에 독사에 물려 숨지는 사람은 10만 명에 이른다. 뱀은 사람에 의해 궁지에 몰리거나 우발적으로 위협을 받으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을 문다. 그런데 뱀의 독은 이처럼 방어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볼프강 뷔스터 영국 뱅고르대 파충류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독소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뷔스터 박사는 “뱀은 먹이를 제압해 잡아먹기 위해 독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독을 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뱀의 독이 이런 방어기능을 위해 진화한 것인지 알아보고자 했다.”고 영국
스완지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인도에서 해마다 수백만 건의 뱀 물림 사고를 빚는 인도코브라. 볼프강 뷔스터 제공.
많은 동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독을 사용한다. 꿀벌, 말벌, 지네, 퉁가리 등은 포식자에게 찌르는 통증을 선사해 자신을 방어한다.
방어용 독이 즉각적 통증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명하다. 포식자가 깜짝 놀라 물러나게 하고, 그 사이 자신도 달아날 시간을 얻는다. 먹이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급성 통증을 일으켜 먹이를 더 날뛰게 할 리 없다.
따라서 독뱀에 물렸을 때 즉각 찌르는 통증을 느꼈는지 알아보면 뱀의 독이 애초 방어용인지 공격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세계 각국의 뱀을 다루는 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192종의 독뱀에 물린 584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일반적인 뱀 물림 피해자가 공포에 휩싸여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만 뱀 전문가는 ‘준비된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됐다.
설문 결과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독사에 물렸을 때 큰 통증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사에 물린 고통은 대부분 붇기, 피부 괴사 등 이차 증상의 결과였지, 일부 예외를 빼고는 벌에 쏘였을 때처럼 즉각적인 통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뱀에 물린 뒤 5분 안에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는 사람은 조사 대상의 15%에 그쳤고, 55%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울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인도에서 가장 큼 뱀 물림 피해를 일으키는 독사인 크레이트는 물렸을 때 초기 통증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종종 잠자는 동안 이 뱀에 물리고도 물린 것을 모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북살무사, 호주의 호랑이뱀, 북미의 악질방울뱀도 물렸을 때 초기의 통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케빈 아르버클 스완지대 박사는 “이런 결과는 뱀독 진화가 방어를 위해 일어났다는 널리 받아들여진 가설에 증거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학계의 통설은 ‘방어가 공격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뷔스터 박사는 “먹이를 못 잡더라도 목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구결과는 뱀의 독 진화에서 중요한 건 먹이 사냥을 위한 자연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뱀에게 방어가 독 진화에서 큰 구실을 하지 못한 이유를 연구자들은 “독니로 무는 것은 마지막 방어전략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이빨을 쓰는 상황에 앞서 숨기와 피하기 등으로 포식자와 맞닥뜨리는 위험을 회피한다.
또 다른 동물의 독이 통증만 컸지 독성이 크지 않은 데 견줘 독사의 독은 치명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독사의 맹독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다른 동물에 전파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독을 이용해 방어할 필요가 적다는 것이다.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독을 분비하는 산호 뱀의 일종. 방어용으로 독이 진화한 예외적인 사례이다. 볼프강 뷔스터 제공.
한편, 예외적으로 코브라 등 일부 독사는 물렸을 때 초기 통증이 강하며, 독을 뱉는 코브라처럼 명백하게 독을 방어용으로 쓰기도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인용 저널:
Toxins, DOI: 10.3390/toxins1203020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