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떨어지자 몸을 재빨리 좌우로 흔들며 헤엄쳐 빠져나가는 태극나방 애벌레. 하야시 마사카즈 제공.
물고기나 소금쟁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날벌레나 애벌레를 호시탐탐 노린다. 이를 피하기 위해 메뚜기, 사마귀, 바퀴, 개미 등은 물에 빠져도 다리를 이용해 재빨리 달아난다.
그러나 수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다리를 지닌 일부 나방 애벌레가 물에 빠지지 않고 빠른 속도로 물 표면을 달려 도망치는 행동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하야시 마사카즈 일본 호시자키 야생동물 보호 연구소 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피어 제이’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런 행동을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2018년 자귀나무 잎을 먹다가 소금쟁이가 우글거리는 연못에 떨어진 검은띠큰나방 애벌레 한 마리가 물에 빠지지 않고 재빨리 물 표면을 헤엄쳐 도망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연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나방 13종을 대상으로 실험실과 야외에서 실험했는데 7종의 애벌레가 물 위를 헤엄쳐 도망치는 것을 확인했다. 물 표면에서 애벌레의 행동은 크게 2가지였다.
긴 몸을 좌우로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면서 추진력을 얻는 방법은 검은띠큰나방을 포함해 태극나방과 애벌레 5종과 밤나방과의 벼애나방 애벌레가 썼다. 뱀이나 뱀장어, 지네 등 몸이 긴 동물이 물에서 헤엄치는 방식이다.
밤나방과의 두점박이밤나방은 독특한 방식으로 물을 헤쳐나갔다. 배 뒷부분을 위아래로 튕기듯이 재빨리 움직여 그 반동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평영으로 헤엄치는 것 같다. 애벌레는 육상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기어간다.
연구자들은 “애벌레가 몸이 길수록 이동속도도 빨랐고 털이 길수록 헤엄치는 데 유리했다”며 “그러나 물 표면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런 형질이 진화한 것은 아니”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애벌레가 물 표면에서 헤엄치는 2가지 방식. 뱀처럼 좌우로 구불거리며 진행하는가(A) 하면 평영을 하듯 배를 위아래로 구부렸다 펴는 탄력으로 헤엄치기도 한다(B). 하야시 외 (2021) ‘피어 제이’ 제공.
그렇지만 “물에 빠졌을 때 이런 탈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서식지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 위를 헤엄친 7종의 애벌레 가운데 6종은 자귀나무 잎을 먹는 종이었다. 이 나무는 주로 물가 습지에서 자라 애벌레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종종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애벌레는 가볍기 때문에 물의 표면장력을 이용해 뜰 수 있다. 표면장력이란 물 분자끼리 서로 강하게 잡아당겨 뭉치는 힘으로, 유리 위에 떨어뜨린 물방울이 둥근 이유이다. 물 표면은 표면장력에 의해 얇고 탄력 있는 막처럼 기능하기 때문에 소금쟁이처럼 가벼운 곤충과 거미 등이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다닐 수 있다.
소금쟁이는 표면장력을 이용해 물 표면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져 다니고 뛰어오를 수도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에서는 나방 4개 과를 실험대상으로 했지만 나비·나방에 모두 133개 과가 있는 점을 고려하면 물 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애벌레는 훨씬 다양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PeerJ, DOI: 10.7717/peerj.1197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