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푼탈리 동굴에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굴된 키 작은 코끼리의 골격. 키 2m 무게 1.7t으로 왜소한 모습이었다. 게멜라로 지질박물관 제공
섬에 오래 고립된 동물은 종종 거대화 또는 왜소화의 길을 걷는다.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에서는 거대화가 진행돼 파충류 최대 포식자인 코모도왕도마뱀이 진화했다.
섬 왜소화의 극적인 사례가 발견됐다. 유럽에서 살았던 가장 큰 종류의 코끼리였던 곧은 엄니 코끼리가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에서 불과 40세대 만에 키는 절반으로 체중은 85%가 줄어들었다.
지중해 섬에서 진화한 왜소한 코끼리의 직접 조상은 가장 큰 코끼리의 하나였던 곧은 엄니 코끼리로 키 3.7m 무게 10t에 이르렀다. 디아그람 라자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시나 발레카 독일 포츠담대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시칠리아 섬 푼탈리 동굴에서 발견된 멸종한 작은 키 코끼리의 두개골 바위뼈에서 처음으로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유기물이 쉽게 분해하는 덥고 습한 지역에서 유골의 고 디엔에이를 추출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로 알려졌다.
연구자들은 5만∼17만5000년 전에 살았던 이 코끼리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해독해 유럽 대륙의 거대 코끼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왜소화했는지 계산했다고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시칠리아의 왜소한 코끼리는 키 2m 무게 1.7t이었다. 현생 아프리카코끼리는 키 3∼4m 무게 5∼6t까지 자란다.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코끼리의 직접 조상은 놀랍게도 가장 큰 고대 코끼리의 하나인 곧은 엄니 코끼리로 키 3.7m 무게 10t이었다.
거대 곧은 엄니 코끼리와 왜소한 작은 키 코끼리가 공통의 조상에서 분화해 따로 진화한 계통도. 시나 발레카 외 (2021)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빙하기 때 시칠리아에 온 거대 코끼리는 간빙기 때 해수면이 상승해 섬에 고립되면서 7만∼20만년 전부터 소형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섬 환경은 일반적으로 육지보다 자원이 부족해 먹이를 적게 먹고 일찍 성숙해 번식하는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된다.
이런 적응 결과, 거대 코끼리는 점점 작은 형태로 진화했다. 시칠리아에는 2종류의 소형 코끼리가 출현했는데 가장 작은 종은 키 1m 무게 300㎏의 조랑말 크기였다. 이번에 분석한 작은 키 코끼리는 이보다 조금 더 큰 종이다.
시칠리아 섬에는 2종류의 왜소한 코끼리가 살았다. 이 종은 키 1m 무게 300㎏의 조랑말 크기였다. 조반니 다로르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놀랍게도 왜소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연구자들은 “코끼리의 크기는 세대마다 200㎏씩 줄어 40세대 안에 거대한 곧은 엄니 코끼리에 견줘 덩치가 15%인 소형 코끼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키는 세대마다 4㎝ 작아졌다.
연구자들은 “사람에 비유한다면 성인이 히말라야원숭이 크기로 줄어든 셈”이라고 밝혔다. 히말라야원숭이의 몸집은 길이 50㎝ 무게 6㎏ 정도이다. 작은 키 코끼리는 지중해의 여러 섬에 분포했지만 1만9000년 전에 모두 멸종했다.
연구자들은 “섬에서의 진화는 벌어지는 진화의 가장 극적인 모습을 종종 보여주지만 거대 코끼리가 짧은 기간에 왜소한 코끼리로 변한 것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례”라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1.05.037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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