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을 하고 산책 중인 리케(왼쪽)와 까미. 일단 사람을 보면 배를 깔고 누워 버리는 천진한 리케와 달리 까미는 조심성이 많다. 한재니씨 제공
동물만 서열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도 서열이 있다. 바로 반려견이 매기는 집안 서열이다. 5살 ‘까미’(미니어처 핀셔)와 ‘리케’(비글)가 매긴 한재니(20)씨의 집안 서열은 몇 번째일까. 재니씨는 까미와 리케 기준, 세 번째라고 한다. 두 마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라고 꼽았다. 울산에서 마당 생활을 하고 있는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왜 할아버지는 까미랑 리케가 꼽은 서열 1위가 됐을까요.
“할아버지가 까미랑 리케를 가장 아껴요. 할아버지가 ‘쓰읍’ 한 마디만 하시면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강아지들이 그걸 다 알아들어요. 집에 들어 가라, 먹지 마라, 하는 말들을 맥락으로 다 안다니까요? 할아버지가 언제 한 번은 ‘쓰읍’ 했더니 애들이 할아버지한테 막 달려가서는 앉아서 간식을 기다려요. 제가 옆에서 먹으라고 했는데 절대 안 먹어요. 할아버지 눈치만 살살 보더라고요.”
-본인이 집안 서열 세 번째면 두 번째는 누구인가요.
“저희 아빠요. 아빠가 까미랑 리케를 데리고 왔거든요. 두 마리 다 유기견이에요. 5년 전에 까미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공고 기한을 기다리며 동물병원에 앉아 있었대요. 안락사 위기에 처한 까미를 데려오고, 그 다음에 까미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동물병원에 다시 갔더니 까미가 앉아있던 자리에 리케가 앉아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역시 안락사가 일주일 남은 상태로요.”
-극적으로 입양이 된 거네요.
“그래서 그런지 까미랑 리케 서로 죽고 못 살아요. 목욕을 시키려고 까미를 데려가려고 하면 남은 리케가 데려가지 말라는 듯이 짖고 울어요. 두 마리 다 함께 산책하기 힘들어서 한 마리씩 가려고 해도 남은 한 마리가 계속 짖고 울더라고요.”
-그럼 서로 죽이 잘 맞겠어요.
“언제가 할아버지가 마당 잔디를 깎는데 까미랑 리케가 서로 합심해서 특정 부분에 앉아 오지 말라는 듯이 짖더라고요. 원래 얘네가 할아버지한테는 절대 안 짖는데 이상하잖아요. 무슨 일인가 싶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잔디를 밀었어요. 근데 거기에 개껌이나 간식을 엄청 모아둔 거예요. 벌레가 들끓고 있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머리를 ‘딱콩’하고 때리며 애들을 혼내는데 풀 죽은 듯 눈치를 보더라고요. 이후 3일에 한 번씩 간식을 주는 걸로 타협을 봤죠.”
-사고뭉치 콤비네요. 서로 그렇게 친한 이유는 성격이 비슷해서일까요?
“성격은 완전 반대예요. 산책을 하면 딱 보여요. 리케는 사람을 보면 바로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리고 난리가 나요. 까미는 사람을 좀 경계하고 친해지기 힘들어요. 까미는 사람이 보이면 짖고, 리케는 사람이 보이면 땅에 배를 문지르고 난리가 나고.… 같이 산책 시키다가 너무 힘들었어요. 마당에서 키워 망정이지 매일 산책을 시킨다면 큰일이 났을 거예요.”
-마당에서 지내는 친구들인데, 추울 때나 더울 때는 어떻게 하나요.
“더울 때 주는 간식이 있어요. 좋아하는 과일이나 간식 등을 잘게 썰어서 얼음 틀에 넣고 물이랑 같이 얼리는 거예요. 더워할 때 그걸 주면 되게 좋아해요. 겨울에는 강아지들 벽돌 집에 보일러가 들어오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따로 집을 지었어요. 너무 춥거나 더우면 집안에 잠시 데려오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한씨는 할아버지와 통화에서 까미와 리케의 안부를 꼭 확인한다. 할아버지가 “재니는 언제 온다 하노?”라고 물으면 두 친구들이 이름을 알아 듣고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서열 3위도 살뜰히 챙기는 두 강아지, 마당 생활에 즐거움만 가득하길 바란다.
안예은 교육연수생,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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