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산책을 나온 보듬이네 식구가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세치, 보듬이, 수지.
도시에서의 산책은 황홀했다. 밤 12시가 되어도 환한 불빛,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카페 등 눈을 빼앗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길고 환한 밤 빼고는 더 이상 매료되는 것이 없었다. 국혜원(38)씨의 반려견 보듬이·수지·세치는 숲속에서 더 신나게 뛰놀고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반려인 국씨와 김동성(38)씨가 경기도 광주 무갑리로 이사한 이유다.
-세 마리 웰시코기를 위해 일부러 멀리 이사했다니, 대단하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고생스러워 걱정했는데, 도시에서 개를 키우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평일에 조금 고된 게 낫다고 하더라. 자연과 가까워 집 밖만 나서면 어디든지 산책을 할 수 있고, 좀 짖어도 집들이 떨어져 있으니 이웃에 폐 끼칠까 마음 졸일 일도 없어서 편하다. 다만 도시에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했다면 여기서는 자연을 유의해야 한다. 산책할 때 진드기도 조심해야 하고, 산에 높이 올라가면 멧돼지를 만날 수도 있다고 해서 늘 산 아래에서만 논다.”
-세 마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보듬이가 엄마, 수지와 세치는 수지의 딸과 아들이다. 보듬이가 지금 11살인데, 6살 때 아이들을 낳았다. 7마리를 낳았는데 우리가 다 키울 수는 없어서 다른 집에 입양을 갔다. 그런데 수지와 세치, 두 마리는 낳자마자 아파서 다른 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세치는 수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두 마리 모두 무척 건강하다. 세치는 자기 의지로 생을 버텨내서 그런지 뭐든지 의지가 대단하다. 체격도 좋고 뭐든지 잘한다. 보듬이랑 수지는 엄마랑 딸이라 그런지 서로 핥아주기도 많이 하고, 다정하게 잘 지낸다.”
바다에 여행 온 보듬이네. 충남 만리포 해수욕장에 거의 매해 놀러간다.
-세 마리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
“눈뜨면 산책 나간다. 개들은 냄새 맡는 일이 직업이라고 할 정도로 산책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문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산책하기가 좋다. 낮에는 쉬고 저녁에도 매일 산책을 나간다. 주말엔 집 뒤에 있는 작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주변 공원에 놀러가기도 한다.”
-셋이 싸우진 않나.
“셋 모두 착해서 크게 사고를 치진 않는데, 여럿이 있다보니 먹을 때 경쟁을 하긴 한다. 아이를 여럿 낳으면 첫째가 딱하고 마음 쓰일 때가 있다던데 보듬이를 보면 그렇다. 보듬이가 우리와 혼자 지낼 때는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경쟁적으로 먹는다. 셋이 북적이며 지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 아이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주는 것도 좋다고 해서, 산책을 할 때 일부러 한 아이만 데리고 나갈 때도 있다.”
-개를 키우면서 사람들과도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 아이를 중심으로 관계가 재편되듯이, 우리도 그렇다. 바느질, 자수 제품을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자수 수업을 해도 ‘웰시코기 자수 제품 만들기’ 같은 걸 꾸리게 되더라. 웰시코기 커뮤니티 통해서 정보 나누며 사람들 사귀고 같이 놀이터에 다니기도 한다. 개들끼리 친해야 반려인들도 친해진다는 점도 재밌다. 광복이, 원도 이런 애들은 만난지 5년이 넘었고, 달래, 루디, 써니랑도 친하다(웃음).”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국혜원 제공
최근 11살 생일을 맞은 보듬이의 생일을 수지와 세치가 축하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