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애피의 에피소드 ⑤ 턱시도 고양이 ‘쿠로’ 새벽부터 밤중까지 찾아 헤매 자동차 밑 보느라 무릎 해지고 북한산 들개 걱정에 산속까지 마침내 돌아와 세 가족 ‘엉엉’
“슬리퍼 놀이가 젤 재밌지∼.” 다음달이면 두 살이 되는 쿠로에겐 모든 것이 장난감이다.
어느 집 반려동물이라도 ‘사고’ 한 번쯤은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일이 행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난해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10월3일 새벽 차에 태우려던 턱시도 고양이 ‘쿠로’를 놓치고 말았다. 잡으려고 허둥대며 소리를 지르자 더 놀란 쿠로는 아주 사라져 버렸다. 서울 정릉의 북한산 자락에 사는 최영진(45)씨는 “그때부터 길고 힘든 하루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형아가 왔나∼.” 쿠로는 아빠의 자동차 소리를 알아듣고 창문 스티커에 내놓은 틈으로 밖을 본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가 하는 것처럼 최씨 부부는 따로 또 같이 온 동네를 구석구석 뒤졌다. 자동차 밑을 엎드려 들여다보느라 바지의 무릎 부분이 헤어져 구멍이 났다. 쿠로가 뚱뚱해 나무 위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북한산의 들개를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졌다. 손전등을 들고 산속을 헤맸지만 쿠로는 없었다. 밤 9시쯤 낙담한 부부는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 굶었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밤 10시 반쯤 ‘야옹∼’ 소리와 함께 현관으로 쿠로가 후다닥 들어왔다. “쿠로!”라는 비명과 함께 셋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최씨는 “이 일을 겪고 우리는 서로가 있어 행복하단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형아’ 품에 안겨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쿠로. 체중이 좀 나간다.
2016년 9월 입양했을 때의 날씬했던 모습.
엄마는 다음 달 두 돌을 맞는 쿠로에게 손수 뜬 보타이를 선물할 계획이다.
-쿠로는 어떻게 입양했나요.
“2016년 9월께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왔어요. 6개월쯤 된 길고양이였죠. 주말부부에 출장이 잦아 키울 자신이 없었는데 찾아온 겁니다. 업둥이처럼 와 ‘업냥이’라고 불러요.”
-그 일 뒤로 다시 안 나갔나요.
“밖을 내다보는 건 좋아하지만 나가려고는 안 해요. ‘쿠로야, 그때 어디까지 갔다 왔니’ 하고 물으면 어김없이 ‘에엥∼’하고 알 수 없는 대답을 하죠.”
-동네를 그렇게 샅샅이 살펴본 것도 처음이었겠죠.
“그때까지 잘 몰랐는데 쿠로를 찾으면서 보니 동네마다 길고양이가 있더라고요. 밥을 주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덕분에 길냥이들을 보면 그냥 못 지나쳐서 말도 걸고, 이름도 붙여주게 되었답니다”
-쿠로의 장기를 소개한다면.
“남편을 ‘형아∼’라고 부르며 따라요. ‘형아’의 차 소리를 알아듣고 창밖을 내다보죠. 남편이 부산에 장기출장을 가는데, 운전석 뒤에 앉아 동행하기도 해요. 멀미를 안 해요. 강아지처럼 공을 던지면 물어오는 개냥이이기도 하고요.”
-동물을 좋아하시나 봐요.
“네. 기회가 닿으면 동물단체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동영상 최영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