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브로드웨이. 사진 픽사베이
뉴욕에 친하게 지내는 두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인디언 청년이었고 또 한 청년은 백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둘은 뉴욕의 한복판 브로드웨이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디언 청년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습니다. “어딘가 귀뚜라미 소리가 나는데” 백인 청년은 어리둥절하며 대답했습니다. “이 콘크리트 건물 숲에 무슨 귀뚜라미 소리야?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하지만 인디언 청년은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고, 발걸음이 멈춘 담쟁이넝쿨에서 귀뚜라미를 발견했습니다. 백인 청년은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 세미한 귀뚜라미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 그 때 인디언 친구가 호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땅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동전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구르는 소리를 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인디언 청년이 말했습니다. "문제는 관심이야!"
사람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열십자)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목사는 십자가라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술집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하나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만 직진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다르게 말합니다. “저기 교회 보이시죠? 그 교회를 지나서 100미터 가면 2층에 또 하나의 교회가 보입니다. 그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목사의 눈에는 교회가 언제나 기준입니다.
관심이란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관심은 모든 것의 출발입니다. 관심은 처음에는 호기심이라는 작은 씨앗처럼 시작됩니다. 호기심이 반복되고, 집중되면 점점 그 씨앗이 자라게 됩니다. 관심은 에너지입니다. 관심이 반복될 때 신념이 됩니다. 신념은 성품이 되고, 성품이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가 그 사람의 현재이자 미래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보고 자기와 맞지 않는 것은 좀체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고,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자기가 알고 싶어 하는 것만 알려고 듭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것이 자기 관심의 결과물입니다. 신념이나 직관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이 관심을 둔 것에 결과물일 뿐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기울이면 거기에 사랑의 해답이 있습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면 먼저 함께한 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는 상관없겠지!”하는 무관심한 마음의 틈을 타고 바이러스는 침투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몸은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하지만 관심의 거리는 더욱 가까이하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따뜻해질 것입니다.
문병하 목사(양주덕정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