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선가게 주인이 ‘이곳에서 신선한 생선 팝니다’라는 간판을 달았다. 생선을 사러 온 한 손님이 간판을 보며 주인에게 말했다. “이 가게 간판에 ‘신선한’이라는 단어를 빼는 게 좋겠네요. 다 신선하지는 않잖아요. 거짓말하는 것보다는 낫죠.” 주인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간판에서 ‘신선한’이라는 글자를 지웠다. 얼마 후 가게를 방문한 친구가 간판을 보며 말했다. “‘이곳에서’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네. 식상한 단어는 빼는 것이 오히려 손님을 끄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주인이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잠시 후 옆 가게 사람도 간판을 보고 충고했다. “거저 주는 것도 아닌데 ‘팝니다’라는 단어도 쓸데없는 거 아닌가? ‘생선’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도 없어. 근처에 오기만 하면 생선 냄새가 나니까.” 듣고 보니 이치에 맞았다. 결국 생선 장수는 간판 자체를 없애 버렸다. 얼마 후 생선가게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고 말았다.
인간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늘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한다. 그리고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진다. 그런데 오늘날 선택의 폭이 지나칠 만큼 다양하고 넓어져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조차 어려워하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정보 홍수에 압도당해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를 고려할 여유조차 없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선택의 기회가 생겼지만 ‘결정의 길’을 잃어버리고 애매하게 썸을 타는 남녀관계처럼 한 가지를 분명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계속 최종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현상의 이면엔 결정과 선택을 잘못한 후에 닥쳐올 책임 추궁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가장 쉬운 선택은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부화뇌동이란 뚜렷한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어떤 훌륭한 선택에도 후회는 따르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선택 후에 그 선택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자면 자신이 선택한 삶에 감사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면 선택한 삶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숱한 기억 중 어느 것을 끄집어내느냐에 따라 우리는 순간순간 행복해질 수도 있고 평생 불행하게 살 수도 있다. 따라서 만일 하루에 일어난 많은 일 중 잘한 일과 좋은 일만 떠올리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한 마음과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너그럽게 다독일 필요가 있다. 어려웠던 과거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행복감과 만족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이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고 했다. 선택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면 감사하며 즐겨야 한다.
문병하(덕정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