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짐작으로 아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확 깨어난 사람은 드뭅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자기 생각에 계속 의지하느냐, 아니면 확 벗어났느냐입니다. 나는 이만하면 깨달은 것 아니냐 하는 사람조차도 아직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아직도 그런 자기 생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이란 존재의 제1 원인을 보고 확인하는 것인데, 생각은 제1 원인이 아닙니다. 생각은 의식에 의지하고 있고, 의식은 다시 생명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제1 원인이니 그걸 알면 됐잖나’ 하나 이 역시 아직 생각입니다. 그래서 선사들이 그토록 해오(解悟)가 아닌 증오(證悟)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말로 아무리 좋은 생각과 가르침을 배우고 기억하면 뭐합니까? 다 생각이니 생각하지 않을 땐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생각은 스스로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밝은 선생이 필요한 겁니다.
참선(參禪)이란 화두를 들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선(禪)에 참여(參與)하는 겁니다. 일체 속에서 돌이켜 제1 원인을 보는 것이 선(禪)이며 그것을 선생에게 배우는 것이 참구(參究) 혹은 참여입니다. 선(禪)을 한다면 제대로 봄이 ‘정견’함입니다. 정견한다는 것은 생각으로 헤아려 아는 게 아니라 ‘봄으로써 하나되는 것’입니다. 영화 <아바타> 속 인사말이 ‘I see you’인데, 이 말의 참뜻은 ‘나는 너를 정견한다’는 것이며, 정견함이란 ‘있는 그대로 너를 봄으로써 너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너를 봐도 자기 생각 속에서 보기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본래 다 하나인 하나님(부처)의 자리를 알지 못하니 하나 되지도 못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이지요. 이것이 결국 아는 것과 되는 것의 차이인 것입니다.
글 김연수/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피올라마음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