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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도 신화가 된다

등록 2022-09-02 17:14수정 2022-09-02 17:18

삶과 죽음을 넘어선 영원의 여정

‘지금, 여기’에서 찾는 신화의 길

※ ‘신화적 치유읽기’ 최종편입니다.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신화들에 대한 글로 그간의 서사적 여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나날의 일상 속에 담겨 있는 신화적 삶의 길을 현시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지금 여기 나의 일상 속에 영원이 있다는 것은 한국신화의 특별한 세계관이지요. 신화와 접속하면서 갖게 된 저의 서사적 믿음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여기 이렇게 있는가

‘오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다룬 바 있는, 제주 신화 <원천강본풀이>의 주인공이다. ‘적막한 들’에서 이름 없이 홀로 방황하던 소녀. 넓고 황량한 세상 속에서 그는 마치 없는 것과 같았다. 너무나 미미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 왜 여기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 허공을 떠도는 먼지 한 알 같은 그 미력한 존재성은 인간의 원형적 표상이다. 그나마 그 존재는 어느 날 아득한 심연 속으로 까뭇 사라질 것이다. 허공을 떠돌던 먼지가 흔적도 없이 스러지듯이.

신화는 적막한 들을 헤매던 오늘이가 존재의 뿌리와 의미를 찾아서 원천강으로 나아가는 사연을 전한다. 그 신화적 여정은 예전 글에서 자세히 살폈거니와, 이제 새롭게 되새겨보려는 것은 오늘이가 길에서 만난 두 사람 장상이와 매일이의 사연이다. 높은 별층당에 앉아서 늘 글을 읽던 남자와 여자. 바다 이쪽과 저쪽으로 있는 곳은 달랐지만 둘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내 것이 아닌 삶’에 갇혀 있는 존재였다. 별층당에서 책을 읽는 일은 남들 보기에 신선놀음이었을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무의미의 감옥이었다.

신화는 장상이와 매일이가 짝을 이루어 결혼함으로써 만년 영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것을 ‘장상(長常)’과 ‘매일(每日)’이라는 이름의 뜻과 관련해서 ‘영원과 순간의 결합’으로 풀이한 바 있다. 영원은 순간 속에 구체화되어서 의미를 얻고 순간은 영원으로 확장되어 의미를 얻은 상황이다. 그렇게 그들은 신화적 존재로 거듭나거니와, 이제 살펴볼 것은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신화다. 그 신화에서 매일 장상 커플은 ‘저승 제일부자’로 일컬어진다. 그들은 어떻게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 저승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매일 장상, 이승에서 저승으로. 영원으로.

매일과 장상을 주인공으로 한 신화의 이름은 <세민황제본풀이>다. <원천강본풀이>와 마찬가지로 제주도 무당 박봉춘 심방이 구술한 신화다. 제목 속의 세민황제는 곧 이세민(李世民)으로 당나라 태종이다. 세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존재의 표상이다. 하지만 신화의 실제 주인공은 황제의 맞은편에 있는 평범한 생활인 매일과 장상이다. 제목이 ‘세민황제본풀이’인 것은 이 세상에 매일장상보다 세민황제 같은 인물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외적 처지가 아닌 내적 욕망 차원의 이야기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언가를 끝없이 탐하고 있다면 나 자신이 바로 세민황제일 수 있다.

고집이 세고 모질었던 세민황제는 가진 권력을 마구 휘둘러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부처를 믿는 사람을 붙잡아다가 험한 형벌을 내리거니와, 그 자신이 이 세상 최고의 신(神)이고자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권력 그 욕망은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릴 무엇이었다. 권력자들은 제 무덤 속에 시종과 시녀를 보물과 함께 순장(殉葬)해서 현세의 권력과 영화를 후세로까지 이어가려고 했지만 부질없는 몸짓이었을 따름이다.

신화는 그러한 욕망이 얼마나 허튼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민황제가 불시에 붙잡혀 들어가서 직면한 저승은 생각과 완전히 달랐다. 그는 더이상 권력자가 아니고 백성은 ‘밥’이 아니었다. 생전에 자신이 행한 착취와 폭력은 빠짐없이 ‘빚’으로 쌓여 있었다. 저승의 혼령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와 빼앗아간 것을 내놓으라고 을러대니 완전한 형세 역전이다. 꼼짝없이 빚을 갚아야 했으나 황제의 저승 궤에는 땡전 한 푼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짚 한 뭇뿐. 저승에는 살아생전에 베푼 것들이 쌓이는 법인데 황제는 누군가에게 짚 한 단을 던져준 게 전부였던 것이다.

저승에 들자마자 가장 구차하고 비굴한 존재가 돼버린 세민황제에게 들려온 이름이 ‘매일 장상’이었다. 궤에 재물이 가득 차 있는, 저승 최고의 부자였다. 황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이었다. 매일 장상의 재물을 빌려서 곤경을 겨우 면한 세민황제는 다시 이승으로 되돌려진다. 그는 본래 그때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저승에서 혼쭐을 내기 위해 불러들였던 것이었다. 웹툰 <지옥사원>에서 정회장이라는 인물이 겪은 바와 통하는 ‘지옥 체험’이다.

지옥에서 벗어나 이승으로 돌아온 세민황제가 천지사방으로 탐문해서 찾아낸 매일 장상은 평범한 생활인 부부였다. 한집에 살면서 남자는 신발을 만들어서 팔고 여자는 술을 빚어서 팔고 있었다. 의아함을 간직한 채 허름한 차림으로 두 사람을 찾아간 황제는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장상이는 한 켤레 값에 신발 두 켤레를 내주고, 매일이는 한 잔 값으로 술 두 잔을 내왔다.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두말없이 빌려주면서 형편이 안 되면 안 갚아도 된다고 했다. 둘은 그렇게 나날의 생활 속에서 ‘매일장상(每日長常)으로’ 베풂을 이어가고 있었던바 그렇게 베푼 인정이 선업(善業)이 되어 저승에 재물로 쌓이고 있는 것이었다.

별층당에서 책을 읽던 남녀가 신발가게와 식당이라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 반전이야말로 이 신화의 묘리(妙理)라 할 만하다. 책을 읽는 일은 남들 보기에 그럴싸해도 그들의 적성에 맞지 않는, 행복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그 오랜 고착을 과감히 떨쳐버리고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행복한 일을 찾아내 삶을 변혁한 것이었다. 신발과 음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니 그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안팎으로 복락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 복락의 삶은 어느 날 자연스레 본원으로의 회귀로 이어질 것이니, 그리고 그들이 남긴 화기(和氣)는 길이 남아서 이어질 것이니 생과 사의 경계는 가히 그들의 서사를 단절시킬 수 없다. 불사약을 찾아 헤매고 사람을 순장시키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영생(永生)의 서사다.

매일 장상으로부터 큰 깨우침을 얻은 황제는 그들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아 삶을 변혁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부처를 섬기며 활인지도(活人之道)를 마련해서 그간의 악업을 씻는다. 신화는 그가 죽어서 저승에 간 뒤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거니와, 서사의 길이 바뀌었으니 저승살이도 질적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꼭 죽은 뒤의 일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늘 우리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세민황제가 삶의 길을 바꾸는 데 성공한 일을 두고서 이를 권력자에게 부여된 특별한 혜택이라고 여길 바가 아니다. 하늘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삶의 길을 바꿀 기회를 준다. 세민황제는 그 하나의 표상일 따름이다.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서사의 길을 바꿀 수 있다. 세민황제는 매일 장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었거니와 우리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신령한 서사를 되새기면서 내가 밟아 나가야 할 진정한 변혁의 길이 무엇인지 헤아려 본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본다.

궁산선비는 어떻게 돈의 신이 되었나

바야흐로 ‘돈 세상’이다. 돈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는 물신(物神)의 세상. 물신과의 싸움은, 또는 합리적 관계 설정은 현시대의 가장 큰 신화적 과제라고 보아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저승 제일 부자에 이은 또 다른 ‘돈의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신의 직책은 ‘돈전신’이고, 이야기 제목은 <돈전풀이>다. <일월놀이푸념>과 <궁상이굿>으로도 불리는 신화로, 주인공은 궁산이 또는 궁산선비다. 자료에 따라 ‘궁상이’라고도 한다. 꽤나 궁상맞아 보이는 이름인데, 실제 삶이 궁상 자체였다. 눈앞의 욕망이나 곤경에 휘둘려 도무지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존재. 그는 어떻게 돈의 신이 된 것일까?

궁산이는 본래 부자였다고도 하고 가난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는 부자 될 자격이 없는 사내였다. 감언이설에 넘어가 바둑두기 노름에 빠져든 뒤 전재산을 다 날리고서 아내까지 저당잡힌 끝에 속절없이 빼앗겨버리니 완전 무대책 민폐남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궁산이가 던져진 곳은 작은 무인도였다. 뱃조각을 붙잡고 섬에 표류하거니와, 깨진 널빤지는 그의 서사를 단적으로 표상한다. “눈을 떠보니 배는 고프고 쓸쓸한데 참대는 우거져서 시름시름 우는 소리를 내어 마음이 슬펐다”는 묘사는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인간의 처량한 형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심리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현세상에 또 얼마나 많은지……

다행히 궁산이는 무너져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난다. 하늘이 부여해준 근원적인 힘 때문이었고, 아내 명월각시와 함께한 서사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아내가 지어준 옷에 들어있던 육포를 씹으면서 굶주림을 면하고 아내가 챙겨준 명주실과 바늘로 낚시를 만들어서 연명한다. 옷과 음식은 아내와 함께했던 서사의 편린이고 명주실과 바늘은 서사를 잇는 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서사를 이어가자 거짓말처럼 길이 생겨난다. 굶주린 새끼 학들을 살리는 적덕 끝에 어미 학의 도움을 얻어 본토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궁산이가 거지로 떠돌다가 아내를 찾아서 재결합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돈의 신’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궁핍한 삶을 이어가던 중 아내가 힘들게 마련한 돈을 가지고 나가서 궁산이가 한 일은 죽어가는 고양이와 뱀을 뱀을 사온 일이었다. 또는 개와 고양이를 사왔다고도 한다. 꽤나 엉뚱한 일이었는데, 그 동물들이 부(富)의 원천이 된다. 그들이 찾아낸 보물 팔방야광주 또는 건망중태에서 쏟아져 나온 재산으로 부부는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두 사람은 돈전신으로까지 좌정하게 되니 놀라운 비약이 된다.

나는 이들이 신으로서 주재하는 돈은 명백히 ‘저승 돈’이라고 보고 있다. 매일장상의 저승 궤에 쌓았던 것과 같은, 인정(人情)으로 생겨난 ‘보이지 않는 돈’이다. 궁산이 부부는 주변의 버려져 가는 존재들에 마음을 주어서 생명적 연결을 이루었는바, 그것이 크나큰 복을 이룬 형국이다. 세상의 뭇 생명과 넓고 깊은 동반적 접속을 이루어냈으니 더없이 큰 재산이다. 이승 돈과 달리 쓸수록 늘어나는 특별한 돈이기도 하다.

궁산이 부부가 이루어낸 부(富)가 마음의 부이고 그들이 주재하는 돈이 ‘저승 돈’임은 의례와의 관계에서잘 드러난다. <돈전풀이>는 죽은 이를 천도하는 망묵굿 의례에서 베풀어지는 신화다. 의례 참여자들은 망자에게 돈을 전해주면서 저승길이 편안하도록 축원한다. 이때 사람들이 내는 돈은 이승 돈이지만, 떠나는 이에게는 저승 돈으로 ‘환전’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전해주는 마음이 ‘영원의 돈’이 되어서 저승 궤를 채우고 복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베푸는 인정은 망자가 생전에 베푼 덕의 결과물일 터이니 결국 스스로 지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으로 이어지면서 영원성을 실현하는 형국이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힘을 내는 특별한 돈. 우리가 삶에서 찾아내고 쌓아야 하는 진짜 돈은 이것이 아닐까? 그 돈은 이미 누구에게나 이미 존재하며,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다. 아낄 이유가 조금도 없다. 지금 바로 내 안의 건망중태를 꺼내어 들고서 세상으로 나아갈 일이다. 어디선가 나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느껴지거니와, 이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새감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사만 년을 살다 :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이제 ‘치유적 신화읽기’ 글을 마침에 있어 마지막으로 소환하고자 하는 것은 사만이의 서사다. 궁산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자연스레 떠오른 이름이다. 사만이는 제주도 신화 <맹감본> 또는 <사만이본풀이>의 주인공으로, 이른 나이에 죽을 운명을 바꾸어 4만 년을 넘게 살았다는 인물이다.

사만이는 더없이 불행한 존재였다. 가난한 집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뒤 어머니 아버지와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 사고무친의 신세가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빌어먹는 일뿐이었다. 거지 생활을 하던 중 인연이 닿은 걸인 여자와 짝을 이루어 부부가 되었으나 살길은 여전히 막막했다. 태어난 자식이 춥고 배고프다고 울음을 우니 처량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능력도 없고 운도 없던 사만이의 삶을 바꾼 변곡점은 백년해골과의 만남이었다. 그가 깊은 산속 험한 가시덩굴에 덮여있던 해골을 외면하지 않고 집으로 고이 챙겨간 뒤 조상으로 모시고 정성껏 예를 갖추자 해골이 부부에게 복을 주어서 큰 부자로 만들어 준다. 나아가 해골은 죽을 위기에 처한 사만이에게 저승차사를 면하는 비법을 알려주어서 명(命)을 이어준다. 사만이가 베푼 인정을 받는 바람에 그를 잡아갈 수 없게 된 저승차사들이 저승 장부를 고쳐쓴 덕분에 사만이는 사만오천육백 년을 살게 됐다고 한다. 영생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긴 시간이다.

궁산이는 새끼 학과 고양이, 뱀 같은 미물과의 접속을 통해 존재적 확장을 이루어냈는데 사만이의 경우는 ‘백년해골’이었다. 해골이 무엇이기에 이런 힘을 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해석의 단서는 사만이가 해골을 ‘조상(祖上)’으로 모셨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조상은 ‘내 삶의 존재적 뿌리이자 맥’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바꾸면 ‘역사(歷史)’라고 할 수 있다. 사만이는 해골로 표상되는 ‘잊혀져 잦아진 역사’와 접속을 이루어내 그것을 ‘나의 현재적 삶’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러자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신령한 서사가 불현듯 살아나 힘을 내기 시작한다. 궁산이가 주변 생명과의 서사적 연결을 통해 존재의 공간적 확장을 이루어냈다면 사만이는 오랜 과거 속 생명과의 서사적 연결을 통해 존재의 시간적 확장을 이루어낸 터다. 경계를 넘어선 신화적 확장의 두 측면이다.

우리에게 백년해골이 무엇인가 하면 오래 흘러온 신령한 이야기로서의 신화(神話)가 그것이다. 보기에 따라 지난 시절의 허튼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을 열고 그것을 품어서 서사적 연결을 이루어내면 삶에 질적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사만이는 사만오천육백 년의 서사적 확장을 이루어냈거니와, 신화 속의 서사적 시간은 지경에 한도가 없다. 세상이 처음 생겨나던 태초로부터 모든 것이 본원으로 돌아가는 먼 훗날의 그날까지 모든 역사가 그 안에 깃들어 있다. 그 서사들이 오롯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그것을 온전한 나의 삶으로 살아낼 때 존재는 모든 시공간적 경계를 넘어서 영원성을 실현할 수 있다.

단순한 기억이나 상상의 문제가 아니다. 엄연한 존재적 실체의 문제다. 적막한 들 속의 미미한 존재성이 마치 허공을 떠도는 먼지 한 알과 같다고 했지만, 그 먼지가 실재했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것은 무한한 시공간적 연결성을 이루는 우주의 일원이다. 그 안에 하나의 우주가 있고, 영겁의 인연이 깃들어 있다. 그 우주적 연결의 중심점이 어디인가 하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 연결성을 오롯이 인지하고 구현해낼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나 자신의 존재성은 세상 그 무엇도 지울 수 없다. 설령 그가 신(神)이라 하더라도!

그간 ‘치유적 신화 읽기’를 연재하면서 이리저리 막혀서 길을 잃기도 했었다. 의미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삶의 소중한 일부였으며, 나아가 이 세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서사적 자기 발견과 갱신을 이루는 이가 있다면 그 자체 하나의 작은 신화가 되는 것이리라고 믿는다. 그간 길고 난삽한 글을 챙겨서 읽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리면서, 삶이라는 서사의 길에 신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기원한다.

신동흔 /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치료학회장

*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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