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본질은 물음이다. 물음을 던지지 않고, 주어진 답을 외우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깨달음을 갖기 위해 끝없이 물음을 던지는 삶이 종교성을 건강하게 한다. 종교가 율법의 합리화와 주해만 치중할 때 그 종교는 바리사이즘으로 퇴락한다. 신을 탐구한다면서 물음을 던지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경직화시켰다.
신앙생활, 그리고 신학교 생활 내내 물음이 많았다. 그런데 늘 돌아오는 답은 ‘넌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스스로 믿음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답답함이 느껴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혼자서 길을 찾아 헤매었다. 굽이굽이 산길을 헤매듯 찾았다.
그러다 불현듯 들은 생각이 있다. 깨달음이기도 하다. ‘안다는 것은 자신이 알지 못함을, 무지함을 인지하는 것이란 것을’ 이후 마음이 엄청나게 편안해졌다. 내가 무지한 자임을 깨달은 것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모른다. 그제야 사람들이 보였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영혼이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사람임을 받아들일 때 천상 존재도 영적 존재도 아닌 미완성체임을 받아들일 때 기도하고 공부하게 된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