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용서가 안돼요.신자 분들이 자주 고민하는 화두이다. “하루종일 용서하려고 했는데 안돼요.”
“그러니까 안되지요.”
“네?”
“하루종일 그사람만 생각하니까 안된다고요.” 그런 분들의 대부분은 용서가 안되는 사람에 대한 생각에 온종일 사로잡혀 있는데, 그런 피곤한 상태에서는 용서가 안된다. 또한 상대방을 용서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것이 용서를 못하게 한다. 방법은 무엇인가. 상대방 머리채를 놓아주고,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행위를 그만하는 것이다. 중세 방식처럼 단식하고, 자신을 때리는 것은 자신에게 가학적이고 병적인 행위이기에 자칫 정신병으로 갈 수도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함에 고착되어 있을 때는 놀러가는 게 좋다. 다 잊어버리고 신나게 노는 게 답이다. 왜 그런가. 피곤할수록 용서가 어렵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빡빡할수록 짜증이 심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래서 그런 때에는 무조건 놀아야 한다. 웃고 떠들고 노는 동안에 에너지가 재충전되고 달라붙었던 미움의 거머리들이 떨어져 나간다.
사진 픽사베이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아무리 정의롭고 정당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사람답고 지성인다운 면모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괴물로 인식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합리적이고 지성적이면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나와 같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괴물로 인식되어 거리를 두게 된다.
지나치게 모범적인 사람들,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평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도덕적으로 살아서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삶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칠 경우 심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은 스스로 혹독한 내면적 규제를 만들어서 스스로를 억제한다. 자아를 내면의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자신에게 잔인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높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잔인함을 보인다. 문제는 스스로 바르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한 위기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멀리서 보면 성자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폐인들이다. 죄 짓고 산다고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 마라. 죄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티끌만한 죄도 안 짓고 산다고 자랑하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이다. 교만이란 죄다. 죄를 짓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님과 바리사이들의 대립 내용을 잘 보면 알 수 있다. 글 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