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을 꿀 때는 눈앞의 대상들이 다 꿈이란 걸 알아차립니다. 눈앞의 일들이 다 꿈이란 것을 안다 함은 전체가 어떻게 보이든 실은 살아있는 의식활동인 채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임을 본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꿈속의 대상들은 모두 둘이 아니게 됩니다. 이것을 ‘불이’(不二·둘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 세상 현실도 다 꿈과 같은 환영이라고 합니다.
사실 꿈속에서도 현실감은 똑같기에 깨나기 전엔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꿈속에서나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그 안에 나타나 있는 모든 대상을 자기 분별로 이것저것 철저하게 분리해 놓고 따로따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어나면 이게 모두 다 자기 생각과 느낌이 만든 허상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상은 이 모든 대상들이 내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혹은 이렇다 저렇다고 분별하여 만든 환영이자 이미지 세계란 것입니다. 물론 우리 생각이나 느낌은 바쁘게 작동하면서 거기에 리얼리티라는 분별 감각을 끝없이 공급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는 가상현실(VR) 안경을 쓰고 보는 영화나 본질에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린 이렇게 제 감각기관의 활동 결과에 철저하게 속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생각으로가 아니고 정견을 통해 직시하고 스스로 본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진짜 실상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실상 세계를 보는 것, 이것을 깨어남 혹은 해탈이라 하는 겁니다. 이걸 기독교식으로 말한다면 꿈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깨어나서 살아계신 진짜 하나님을 만남이며 이를 천국 혹은 마음속에 하늘 왕국이 열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모든 게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불가사의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쉽게 하나라고 말하지 않고 둘이 아니라고만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바쁜 현대인의 일상 생활 속에서 이런 눈이 열리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깨어나라든가 눈을 뜨라든가, 눈이 있는 자는 보라는 겁니다. 이걸 쉽게 이해하려면 미시적 안목과 거시적 안목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세요. 우리 일상을 아주 거시적 안목으로 본다면 과거는 다 꿈같이 허망합니다.
한사람의 평생도 지나서 보면 덧없고 아무것도 머물지 않아 환영입니다. 더 크게 천년만년 단위로 본다면 한때의 부자나 권력자란 게 얼마나 보잘것없고, 그 모든 부와 권력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물거품이자 환영 같은 것이겠습니까?
그 안목으로 본다면 모든 게 다 꿈 같으니 결국은 ‘불이’(不二)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시적 환영과 충동적 에너지들의 활동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면 곧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영원한 진리의 안목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글 김연수(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시·피올라마음학교 교장· <정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