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가시의 성(性)
탁낫한도 여승 떠나보내며 “무심한 우주여, 왜?”
사제 뽑을 때 ‘여성 관심’ 질문에 “없다”면 탈락
성만큼 매혹적인 게 있을까.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워 가시에 찔리기 십상이다. 젊은 날의 유혹과 시험을 견뎌낸 수행자들의 얘기엔 늘 애틋함이 남는다. 언젠가 틱낫한 스님도 첫사랑을 잃고 가슴 아렸던 추억을 고백한 적이 있다.
여승 가슴에 머리 내맡긴 이별이 마지막 신체접촉
스물네 살 기운 뻗치던 시절, 베트남 산악지대의 절에 살던 그는 스무 살 여승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음력 설날 아침 예불을 마치고 여승과 함께 부엌에서 불을 쬐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다른 말만 늘어놓았다. 여승은 한참 귀 기울여 듣다가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공 인근의 절로 옮겨 그 여승과 불경 공부를 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움을 알고 베트남 북쪽으로 여승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이별의 순간 여승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도 자신의 몸을 여승의 가슴에 내맡겼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신체 접촉이었다.
나는 너무 괴롭다.
내 혼은 얼어붙었다.
폭풍의 밤에 버려진 기타의
여린 줄처럼, 내 가슴은 떨린다.
그렇다. 봄은 벌써 와 있다.
그러나 저 이상한 새들의 울음소리엔
선명한 신음소리가
어김없이 섞여 들리는구나!
아침 안개는 피어올랐고
봄의 미풍은
나의 사랑과 절망을 노래한다.
너무나도 무심한 우주여, 왜?
항구로 나 혼자 왔다.
그리고 이제 혼자 떠난다.
고향 가는 길은 아주 많이 있다.
그것들이 침묵으로 내게 말한다.
나는 절대를 부른다.
시방 구석마다에
봄은 왔건만,
아아, 들리는 노랫소리는
이별의 노래뿐.
젊은 비구승 틱낫한 스님의 시엔 이별의 아픔이 절절히 배어 있다. 만약 그에게 수행이 없었다면 그의 사랑은 단지 ‘애착’이나 ‘비탄’으로만 머물렀을지 모른다. 틱낫한 스님은 한 여승에 대한 사랑을 붓다의 자비심으로 꽃피웠다.
“그놈의 물건 때문에…”라는 말 듣고 낫으로 거시기 싹둑
틱낫한 같은 수행자가 되고자 출가했을지라도 청춘에겐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시 없는 장미 정원’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사제가 될 신학생을 뽑을 때 시험관이 묻는 질문을 들려준다. 만약 “여성에 관심이 있느냐”는 물음에 신학교 입학 희망자가 “없다”고 답하면 그는 탈락 1순위가 된다고 한다. 청년이 여성에게 관심을 갖고 정욕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신학교에 들어가면 공동체 생활을 하는 신학생들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자위행위를 비롯한 성욕의 발산이 금지된다. 수십 명이 나란히 잠을 자는 신학생들이 손을 이불 안으로 넣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나, 절에서 갓 들어온 행자나 사미승들이 화장실에 갈 때는 두 명이 짝을 지어 가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단체 생활을 할 때는 그나마 욕구가 자연스럽게 제어되기도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할 때 유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님들 가운데는 자신의 남성을 스스로 제거해버리는 이도 있었다. 내가 아는 건실한 비구 스님 한 분도 어린 시절 믿고 따랐던 스님들이 하나 둘씩 환속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사랑하고 따르던 사형조차 떠나가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몰라 궁금해하는 그에게 누군가가 “그놈의 물건 때문에 유혹을 못 견뎌서 그렇지”라고 얘기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그 순간 부엌으로 들어가 낫으로 자신의 남성을 잘라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인간에게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과 함께 원초적인 본능에 해당한다. 수도자의 수도 과정은 이런 본능적인 욕망과의 싸움이다. 불교의 『능엄경』에서도 “음욕을 끊지 않고서 선정을 이루려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으니, 피 끓는 청춘으로 불도를 이루려는 수도자에게 성욕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어쩌면 욕망의 정도가 그 내면의 정도인지 모른다. 성욕 또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 넘어 하느님과 인류, 자연의 사랑으로
불교 교리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아비달마 구사론』에 보면 하늘나라(천계)에선 인간 세계보다 성욕이 훨씬 엷어진다고 한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더 엷어져 사왕천과 도리천에서는 천신과 천인들이 우리 인간처럼 교접을 하긴 하지만 사정하는 대신 바람을 발사한다. 야마천에서는 포옹만 하고, 도솔천에서는 단지 악수만 해도 된다고 한다. 또 화락천에서는 서로 웃기만 해도 되고, 타화자재천에서는 서로 눈만 마주쳐도 성욕이 해결된다고 한다. 결국 욕망이 적을수록 하늘은 가깝고, 욕망이 적어질수록 더 높은 천계에 오른다는 것이다.
아시시에서 프란치스코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클라라 성녀다. 클라라는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프란치스코보다 11년 늦게 태어났다. 그는 프란치스코를 만난 뒤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그에게 향했다. 프란치스코에 의해 훗날 클라라 수녀회로 불리는 ‘가난한 자매들의 수녀회’가 탄생하게 됐고, 클라라는 많은 자매들과 함께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사랑의 삶을 살며, 빛이라는 뜻을 지닌 그의 이름처럼 태양 프란치스코의 빛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성당엔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에게 해준 옷이 전시돼 있었다. 남녀의 사랑을 넘어 하느님과 인류, 자연의 사랑으로 승화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사랑 앞에서 순례단도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는 어려서부터 꽃반지를 끼고 화관을 쓴다. 언젠가 커서 시집갈 때 할 것을 소꿉장난하면서 미리 해보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당 화단엔 작은 들꽃이 피어 있었다. 스님 한 분이 꽃을 따 수녀님의 손가락에 꽃반지를 묶어주었다. 한 나이 든 수녀님이 다시 젊은 스님의 손에 반지를 채워주었다.
클라라 성녀의 무덤엔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클라라 상이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리엔 예쁜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프란치스코 상 앞에 한참 동안 앉아 있던 한 스님이 클라라 성녀의 화관 앞에서 합장한 채 또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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