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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스님들이 수녀님들에 뿔났다, 고름이 터졌다

등록 2009-10-30 09:40

돌려읽는 기도문에 하필이면 “…주 예수…아멘”

그리스도교 지나친 배타성 도마 올라 ‘아슬아슬’

 

콜로세움을 벗나면서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빚어진 일촉즉발의 위기가 떠올랐다.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성당에 도착해 지하에 있는 조그만 석실에서 예배를 볼 때였다. 캔터베리 대성당은 성공회 성당이었기에 성공회 소속인 카타리나 수녀님과 엘리자베스 수녀님이 사전에 예배를 준비했다. 두 수녀님은 미리 준비한 기도문을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었다. 그 종이엔 수녀님들과 함께 스님들과 교무님들이 읽어야 할 기도문이 쓰여 있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기쁨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기 차례가 된 한 스님이 기도문을 읽자 스님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스님 차례에 읽도록 쓰여 있는 기도문은 “만물을 지으신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아멘”으로 끝나고 있었다.

 

“수녀님들이 부처님 탑 앞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모욕” 눈물

 

그리스도교는 우주가 한 분 절대자인 여호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됐다고 믿지만, 불교에선 한 분 절대자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모였다가는 흩어지기를 반복한다고 본다. 그런데 수녀님들이 읽는 기도문은 “인류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연 환경 보존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등 보편적인 내용인데, 하필이면 창조론을 언급한 기도문을 스님이 읽도록 돼 있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스님이 읽게 된 기도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기리며 기도합시다”였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온갖 놀라운 질서와 생물로 가득 찬 우주를 만드셨나이다.”

 

스님의 기도 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 기도 후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숙소인 수도원의 기도방에 모든 삼소회원들이 모여 앉았다. 이토록 속앓이만 하면서 갈등을 키울 게 아니라 터놓고 한번 얘기해보자고 모인 자리였다.

 

일단 판이 벌어지자 그 동안 곪았던 고름들이 한꺼번에 터지기 시작했다. 먼저 스님들이 포문을 열었다. 어떻게 부처님 성지에선 고개도 숙이지 않던 분들이 이토록 남의 종교에 대한 배려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한 스님은 “수녀님들이 부처님 탑 앞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모욕감에 눈물이 났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타종교의 독선에 대한 얘기가 쏟아질 땐 과연 이 순례가 지속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수도복 입은 수녀에게도 버젓이 “예수 믿으시오”

 

약 두 시간 동안 폭풍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쳤다. 갑자기 카타리나 수녀님이 일어서서 두 팔을 벌리더니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다. 그는 기도문을 같이 읽으면 좋아할 줄만 알았다면서 그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통곡했던 원불교 하정 교무님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지나친 배타성 때문에 타종교인들이 입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 줄 아십니까?”

 

자신의 의지대로만 처신하기 어려운 수녀님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는 하정 교무님이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의 연장선상에서 타종교인들이 피해의식을 느끼기 십상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수천 년 종교의 문제가 그 자리에서 해소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곪아 있던 화농이 터져버린 듯 시원한 감도 없지 않았다. 그 날 밤 오고 간 말들의 여진 때문에 스님과 교무님과 수녀님 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엔 다시 ‘비 갠 뒤 하늘’의 모습이었다. 충돌할 땐 하더라도 다시 본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수도자의 힘이기도 했다.

 

카타리나 수녀님도 지진이 한바탕 지나간 듯한 표정들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녀님도 그리스도인들의 배타성으로 인해 타종교인들이 받은 상처를 모르지 않았다. 카타리나 수녀님은 내게 순례를 떠나기 직전 서울에서 겪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하철을 탔는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쓴 띠를 어깨에 두른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와 “예수 믿으시오”라며 위협적으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수도복을 입은 수녀에게 그럴 수 있는지 할 말을 잃고 말았단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니, 수녀님이 예수님을 안 믿으면 누가 믿어요?”라고 하자, 그 남자가 달려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지옥 가고 싶어”라고 협박하더라는 것이다. 수녀님은 이 일을 겪은 후 며칠 동안 떨리더라고 했다.

 

박해 받던 개신교는 가톨릭의 과오와 단절했을까

 

우리나라에선 개신교가 가톨릭조차 이단시하곤 한다. 그리고 역사 이래 그리스도교의 범죄는 로마 가톨릭이 저지른 범죄로 규정한다.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죄악을 고발하며 교회를 개혁하려 했을 때 그들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화형을 당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그런 박해를 받으면서 가톨릭의 죄를 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던 개신교는 가톨릭의 과오와 단절했을까.

 

영국에서 구교로부터 탄압받고 오늘날 미국의 건설자가 된 청교도들은 미국에 건너갔을 당시 가톨릭 신자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고 조찬선 목사는 전한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오랜 항해 끝에 케이프 코드 반도 북단인 프로빈스타운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이 침략자들을 일거에 전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마사소잇 추장은 병들고 굶주리고 헐벗고 떠는 그들을 불쌍히 여겨 식량과 겨울용 침구를 주어 연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에만 감사했다.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그 지방 원주민의 절반이 죽자 청교도들은 ‘하느님께 병균의 역사를 감사’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식량을 훔치기 시작하자 다른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연합군을 조직해 이방인들에 대항했다. 그러자 청교도들은 평화 교섭을 하자며 연합군 부족의 추장 네 명을 만찬에 초청했다. 이에 마음을 연 추장들이 오자 잠복해 있던 청교도들은 그들을 일시에 암살하고, 추장들의 목을 긴 장대 끝에 매달아 20년 동안이나 플리머스 청교도 마을 앞에 매달아두었다.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인디언 원주민을 말살하고 미 대륙을 장악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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