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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선교사 앞세워 땅끝까지 ‘피의 역사’

등록 2009-10-21 13:51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평화와 자비는 ‘독선’

인디언 청소와 흑인 사냥엔 ‘예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가톨릭 신부님과 수사님, 수녀님, 신자 들의 모습에서 그런 살인과 폭력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신사적이고 사랑이 넘쳤다. 그러나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한 교리적 독선에 맞설 만한 용기를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16세기 하이티 섬에서 자행된 원주민 학살에 대해 들은 도미니카 수도회 소속 사제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는 무지한 정복자들을 향해 피를 토하며 질타했다.

 

“무구한 인종에게 그토록 잔인한 짓을 자행하다니요. 당신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대체 어떤 정의가 인디오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당신들은 무슨 권리로 자기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나요?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그들은 이성이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나의 신 외엔 모두 ‘악마’ 도그마…독선적 교리에 맞설 용기 있을까

 

그러나 그런 범죄를 행한 집단이 힘이 있거나 당대의 ‘정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순응하고 이를 돕거나 부추기는 종교인들이 더 많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상에 사랑과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 피의 역사가 씌어지게 된 큰 이유이다.

 

교목으로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조찬선 목사처럼 역시 대광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 강의석 군이 ‘종교의 자유’를 요구했을 때 그의 손을 들어주었던 류상태 목사는 많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비리도 문제지만 그리스도교의 문제의 뿌리는 독선적 교리라고 했다. 인류의 평화가 어떻게 깨졌는지를 정확히 살펴보기만 한다면, 미국 인디언 멸망사인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라는 책을 몇 쪽만이라도 읽어본다면 누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인디언 멸망사를 읽은 뒤 효창공원을 거닐며 한 선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장난치듯 산 채로 팔과 다리를 베는 것은 동물에게도 하지 못할 짓인데, 어떻게 인간에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그랬더니 선배는 나와 다른 적으로 규정되는 순간, 이미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고 했다.

 

나의 신 외엔 모두 악마라는 도그마는 나 이외엔 모두 죽어 마땅하다는 살육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땅 끝까지 전도에 나서며 평화와 자비의 땅을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선교사를 앞세운 미군들이 운디드니의 인디언들을 거의 몰살시킨 뒤였다. 그들은 부상 당한 인디언 47명을 포장도 없는 마차에 싣고, 혹심한 추위 속에 3일 간 방치하다가 교회 예배당으로 데려갔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된 교회 설교단 뒤엔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자비를.”

 

 

악의인지 호의인지 의심해야 할 로마의 밤은 슬펐다

 

인디언을 청소한 땅엔 아프리카에서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노예로 수혈되었다.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에서 이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사냥당한 흑인들은 목에 쇠고랑을 차고 채찍을 맞으며 1천 킬로미터가 넘는 해안으로 끌려갔다. 이동 중에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안지대에 도착하면 짐승처럼 우리에 갇혔다. 노예 상인들은 그들을 발가벗긴 뒤 검사해 품질 등급을 정하고 쇠를 달구어 가슴에 이를 표시했다. 10일에서 15일이 지난 뒤 노예 무역선이 도착하면 흑인들은 어둡고 습기차며 층 사이가 50센티미터에 불과한 배 밑창에 차곡차곡 갇힌 채 목과 발엔 사슬이 채워졌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신대륙에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 이렇게 아메리카 대륙에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이 1,000만에서 1,500만 명에 달했다. 이는 노예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포획한 흑인의 3분의 1 정도로 추산됐다.

 

이렇게 해서 유럽 못지않은 독자적 문명을 구축했던 1억 명의 아프리카 대륙 흑인들 가운데 5천만 명이 죽거나 노예로 붙잡혀 갔다. 교회는 이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낄 필요가 없는 정당한 일이라고 옹호했다.

 

그 평화롭던 아프리카는 서구 사회 사람들이 비만을 어쩌지 못해 골치를 앓고 있는 동시대에 빵 한 조각과 마실 물 한 모금조차 없어 죽어가고, 에이즈 등 병이 창궐하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저주의 땅이 되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구호의 손길과 구제비를 자랑하는 교회와 선진 제국의 자비에도 불구하고.

 

콜로세움 앞에서 청년 둘이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자꾸만 말을 걸었다. 뭔가를 도와주겠다는 것처럼 미소와 제스처를 취하며 수녀님과 교무님과 스님 들을 붙잡고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그들이 소매치기의 바람잡이일지 모른다며 조심하라고 했다. 그들이 뭔가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을 도울 수 없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뭔가 호의를 베풀려 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린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의 밤이 슬펐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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