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이룬 사랑 애타하며 분수에 동전 던졌을까
“가야지, 시집”했던 스님들에 부처는 질투했을까
진명 스님은 중학교 때 간이 붓는 병으로 1년 반이나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런 중병을 앓게 되자 죽음에 대해 고뇌하느라 이성에 눈을 뜨는 사춘기를 지나쳤다는 것이다.
진명 스님이 학인 시절 서울에서 부산으로 출타를 할 때였단다. 그가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다. 출가자의 처지여서 사사로운 얘기들을 나누고 싶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출가한 스님들에 대해 일반인들은 궁금한 게 많았다. 스님 옆자리에 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쳐다보는 것이 말을 걸어올 것 같아 스님은 계속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런데 잠시 책을 덮자마자 노신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비서들이 달려와 “회장님, 회장님” 한 것으로 보아 기업체 회장님인 듯했다.
“이 좋은 세상에 왜 출가를 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제라도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진명 스님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걱정도 많으시네요. 부처님보다 더 좋은 분이 나타나면 당연히 가야지요.”
그러자 노신사는 젊은 비구니 스님을 당돌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란다.
장난꾸러기·개구장이·말괄량이 수도자들 ‘물 만난 고기’
여성 출가자들은 이성 문제에 있어서 스스로 철저해진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속퇴를 해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스님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인연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가 쌓은 전생의 업과 인연에 의해 그렇게 됐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님들은 자유스러운 편이다. 어쩌면 자유는 두려움 없는 자신감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선재 스님과 진명 스님에게 부처님보다 더 멋진 분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둘이 짠 듯이 동시 스테레오가 터져나온다.
“가야지!!!”
그들의 장난기 어린 소리를 고대 로마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반겼다. 미네르바 광장엔 수많은 인파로 넘쳐났다. 한국에서 온 미네르바들도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입에 물었다. 수녀님과 교무님이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스님이 수녀님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주면서 2주 넘게 동거하며 쌓은 친근감을 보여주었다. 승복과 수도복 속에 감춰진 천진한 동심이 로마의 햇살 아래 드러나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스님, 개구장이 교무님, 말괄량이 수녀님 들이 골목을 휘감고 돌았다. 마리아 수녀님은 진명 스님, 엘리자베스 수녀님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마리아 수녀님은 가톨릭 수녀님들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자유스러워 보였다. 틀에 갇히기보다는 여유가 넘쳤던 마리아 수녀님은 로마에 오기 전부터 로마에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뽐내곤 했다.
로마에서 묵은 수도원에 아니나 다를까, 마리아 수녀님의 남자친구라는 분이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티칸에 유학 중인 신부님이었다. 마리아 수녀님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성당에 다닌 친구였단다. 그런데 자라서 남자는 신부님이 됐고, 여자는 수녀님이 됐다. 멀리 이국 땅에서 공부하는 그를 위해 스님들과 교무님들은 남은 고추장과 김 등 반찬을 챙겨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반항과 순명의 두 해마 사이, 그들은 어느쪽으로?
마리아 수녀님과 삼소회원들에게 스파게티를 사주려고 한 달 동안 먹을 것 안 먹고 돈을 절약했다는 신부님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차에 올랐다. 마리아 수녀님도 1층 로비에서 가진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신부님과 작별했다. 마리아 수녀님은 특유의 명랑함 그대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차 안의 다른 눈빛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하던지.
가끔 말은 호쾌한 대장부처럼 내뱉기도 하지만 정작 삶 속에선 살피고 또 살피는 여성 수도자들의 심중을 헤아리는 그 눈빛들과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시린 무언가가 밀려왔다.
살아 숨쉬는 듯한 거대한 조각상들 앞에 맑은 폭포수가 연못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가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그 분수 광장이다. 광장은 사람들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못다 이룬 사랑이 이뤄진다거나 꿈에 그리던 사람과 다시 로마에 올 수 있다는 속설에 따라 손을 잡거나 껴안고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연인들이 많았다.
트레비 분수에 가득 찬 인파는 저마다 못다 이룬 사랑을 그리워하듯 열심히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도 익숙한 패션들이 늘어서 분수대로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수도자가 되기 전 소녀로 돌아간 이들이었다. 분수대를 배경으로 한 줄로 늘어선 채 동전을 던지면서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분수대를 향해 기도했다.
거친 마음의 파도를 넘어 대양으로 대양으로 나아가는 기도일까. 수도자 앞 분수대엔 ‘바다의 신’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의 신’ 양쪽엔 대조적인 두 해마(바닷말)가 있었다. 왼쪽 해마는 거칠게 목을 돌리며 반항하고 있고, 오른쪽 해마는 유순하게 순명하는 모습이다. 천진하게 분수대를 뛰어다니는 수도자들을 향해 내 아픈 가슴이 묻고 있었다.
‘수녀님, 교무님, 스님! 당신은 지금 어느 쪽에 서 계신가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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