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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평화 기원문은 장벽 못 넘고 절망의 발길만

등록 2009-09-23 14:26

<16> 이유있는 저항

미·영의 농간과 이스라엘 압박에 분필 대신 총

침공과 강탈로 이룬 ‘평화의 도시’ 원조를 향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오스만은 독일 편을 들면서 패전국이 돼 멸망했다. 세계대전 중 영국은 아랍인들을 설득해 오스만과 싸우도록 했다. 마침내 오스만과 싸워 이긴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에 그들의 독립 국가를 세우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축적한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유럽의 정치권을 움직인 유대 거부들의 막후 조종으로 시오니즘의 불길이 거세졌다. 유럽의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고, 가난한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땅을 팔았다.

 

60만 명에 2/3을 주고, 300만 명에 1/3을 준 유엔

 

1차 세계대전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영국의 정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독립을 약속하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어오고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두 손 들고 문제를 유엔에 넘겨버렸다. 이때 유엔은 인구 60만 명인 이스라엘에 이 땅의 3분의 2를 주고, 이스라엘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인구 300만 명의 팔레스타인에는 땅을 3분의 1밖에 주지 않는 국가 경계를 선포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돈의 힘으로 정치권을 조종하는 유대인의 로비 덕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선포를 받아들여 독립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국가 건설을 포기하고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마자 팔레스타인은 1차 중동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패했다. 1970년대까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이 참여하는 2, 3, 4차 중동전쟁이 계속되었지만 아랍의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연전연패했다. 이스라엘 뒤엔 미국과 영국이라는 골리앗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60년대부터 레바논을 거점으로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군(PLO)’을 결성해 게릴라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PLO마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에 의해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 저항운동인 인티파타(민중 봉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이스라엘에 의해 표적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 아메드 야신 등 일곱 명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교사 출신이었다. 이들은 애초 교육을 통해 점진적인 개혁을 하고자 했지만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나자 저항운동의 지휘부가 됐다. 하마스의 목표는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점령한 모든 영토를 수복하는 것이다.

 

이런 이슬람 저항 세력에 맞서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여론을 무시한 채 이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벽으로 에워싸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전 ‘팍스 로마나’ 처럼 이젠 ‘팍스 아메리카’

 

장벽엔 검은 페인트로 큰 글씨가 쓰여 있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영국 블레어 총리, 이스라엘 샤론 총리를 테러리스트라고 적어놓은 것이다. “이 장벽은 곧 붕괴될 것”이라고 써놓은 것도 있었다.

 

여성 수도자들은 평화의 기원문을 읽었다. 그 소리는 장벽에 부딪혀 다시 순례단에게 되돌아왔다. 쌓다 만 장벽 위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기도하는 여성 수도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순례단이 장벽을 떠날 시간이었다. 그러나 교무님과 수녀님과 스님들은 줄지어 벽을 오갔다. 마치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장벽 사이에 갇힌 사람처럼 그들의 절망도 깊어갔다.

 

우리는 떠나야 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을 짓밟았고 결국은 지금의 벽이 놓이게 된 단초를 제공한 제국의 도시 로마로 가기 위해서였다. 모든 나라와 식민지 백성이 로마의 군마와 칼 아래 굴복해서 평화가 이뤄졌다는 ‘팍스 로마나’의 도시로 가는 것이다.

 

강한 세력 아래 굴종하고, 그편에 서는 것을 평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2000년 전 ‘팍스 로마나’에 경배했고 지금은 ‘팍스 아메리카’를 절대자처럼 섬긴다.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은 강자를 우상화하고 신격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7만 기의 핵무기를 지닌 미국의 위험에 대해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단 몇 기의 핵무기를 만들려는 약자를 ‘악의 축’이라고 비난하는 미국에겐 자연스레 동조한다. 강자가 두려운 약자들은 강자가 가리키는 손가락질에 따라 “사탄이다” 비난하고 “도둑이야”라고도 외친다.

 

약자들의 땅과 자유를 빼앗고 저항자들을 노예로 데려와 지은 ‘평화의 심장부’. 그 로마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자 ‘평화의 도시’는 점점 멀어져갔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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