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분리 장벽
동네 쪼개며 8m 높이 300km 빙 둘러싸
2000년 전 제국의 침략으로 비극 ‘씨앗’
장벽은 두껍고 아득히 높았다. 손을 뻗어도 뻗어도, 아마 장대를 든다 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8미터 높이라고 했다.
이처럼 거대한 콘크리트가 동예루살렘의 주택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거주 지역을 둘러싸는 분리 장벽이었다. 그 장벽 위엔 고압선이 지나고 있었다. 장벽은 주택가 골목을 가로질렀고, 담장은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가 집을 둘로 갈라버렸다. 동예루살렘에서 한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넘기엔 너무 높은 담이 쳐져버렸다.
1분이면 올 곳을 한 시간 넘게 빙 돌아와야
순례단이 이 지역을 방문하기 직전에 끝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했다. 하마스는 무장 저항 조직이다.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는 하마스는 서구에선 테러 단체로 불린다. 이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해 팔레스타인을 이끌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때 예루살렘을 방문해도 되느냐는 염려 섞인 얘기도 많이 들은 터였다.
순례단이 분리 장벽에 가겠다고 하자 현지 가이드는 벽밖에 볼 것이 없는데 뭐 하러 가느냐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마음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나선 순례단이 분리 장벽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 앞에 도착하자 벽은 미사일을 발사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고해 보였다. 벽 앞에서 여성 수도자들은 무력한 자신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다. 장벽은 순례단을 압사시킬 듯 앞으로 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2005년부터 쌓기 시작한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300킬로미터나 둘러쌀 예정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한 폭탄 테러가 잇따르자 이스라엘이 한 도시 안에서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 둘레를 벽으로 둘러 막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순례단이 기도를 하는 사이 옆으로 돌아가 보니, 그 옆은 이제 장벽을 쌓기 위해 기단 위에 철근들만 뾰족뾰족 나와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년 하나가 다가오더니 철근을 뛰어넘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사라져갔다. 잠시 후 네 소년이 역시 위태위태하게 그 철근을 뛰어넘어갔다.
소년은 이 벽마저 쌓아올려지면, 1분이면 오는 이곳을 한 시간 넘게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소년의 눈동자 속에도 콘크리트 장벽이 어른거렸다. 팔레스타인과 쌍방 합의 없이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쌓는 장벽의 높이가 더해진 만큼 소년의 증오심도 그만큼 자라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을 등에 업고 세계적인 군사 강국으로 부상한 이스라엘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침입으로 고향과 집은 물론 부모, 형제, 자매를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폭탄을 둘러맨 자살 테러로 약자의 좌절을 절규하고 있다.
예루는 도시, 살렘은 평화, 그리하여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의 예루는 ‘도시’를 의미하고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따라서 예루살렘이란 ‘평화의 도시’다.
그런데 어쩌다가 예루살렘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가 된 것일까. 이 역시 제국의 침략으로 비롯되었다. 2000년 전 로마가 침략하기 전까지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땅이었다. 서기 135년 로마 제국이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서 추방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터전을 잃고 세계의 유랑민이 되었다.
아랍인들도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한 사라센 제국을 건설하여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인근 지역을 장악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으로 불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때부터 예루살렘을 성도로 삼아왔다. 십자군 원정 당시 기독교도들이 일시적으로 점령한 때를 제외하고는 아랍인들이 이 지역을 통치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곳을 떠난 지 2000년이 다 돼가도록 유대인들은 선조들의 땅을 잊지 않았다.
유대인이란 민족이라기보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란다. 여호와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 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은 유랑객으로 떠돌면서도 그들끼리 똘똘 뭉쳐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어느 곳에 가서도 결코 섞이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뭉친 유대인들은 그 독자성과 배타성으로 인해 어느 곳에서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부각되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반유대인 운동이 전개된 것도 그것이 큰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치에 의해 유대인 600여만 명이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기도 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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