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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부처 위의 부처, 예수 위의 예수, 어머니!

등록 2009-09-09 10:14

나의 관세음보살, 나의 성모님 ②

때론 자비의 눈물로, 때론 지혜의 칼로

 

 

나는 어머니의 얘기를 가슴으로 듣기를 좋아했다. 출가자들로부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비록 출가자라 하더라도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한 이들이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환생으로 추앙받는 진묵대사는 전북 완주 왜막실에서 어머니가 열반할 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모셨고, 우리나라 근대 선을 중흥시킨 경허선사도 계룡산 동학사로 가기 전까지 청계산 청계사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근래에도 그런 분들을 적지 않게 보았다. 평택 만기사의 원경 스님은 절에서 어머니가 열반하기까지 정성 들여 모셨고, 젊은 시절 선방을 돌아다니던 대선 스님도 완주 요덕사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를 모셨다. 충주 석종사 선원장 혜국 스님은 상좌들의 노모를 대신 모셨다. 출가 뒤 혼자 남게 된 노모가 걱정돼 수행에 전념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자기가 대신 자식 노릇을 하며 제자들을 도운 것이다.

 

도벽 심한 아들에게 천하를 훔치라며 출가시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사 중에 중국의 황벽선사가 있다. 내가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다포에 “뼛속에 스며드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 어찌 매화 향기를 얻으리오”라고 쓰여진 글도 황벽선사의 것이다. 선사로서의 탁월한 면모도 면모려니와 내가 더욱 진하게 느끼는 것은 그의 어머니 사씨 부인의 향기다. 내 어머니가 관세음보살처럼 보듬어주신 분이라면, 사씨 부인은 지혜보검처럼 자식의 무지와 집착을 단칼에 베어준 문수보살이다.

 

황벽선사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는 어려서 도벽이 심했다고 한다. 그것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꼬리가 길었던 모양이다. 짐승들과 농기구까지 훔친 그가 어느 날 이웃집 머슴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어머니 사씨가 아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훔치는 데도 세 가지 길이 있다. 가축이나 잡동사니처럼 작은 것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라를 훔치는 사람이 있고, 또 천하를 훔치는 자도 있다. 작은 것을 훔치는 것은 양심을 좀먹는 짓이다. 큰 것을 훔치는 것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고, 잘살게 할 수도 있다. 천하를 훔치는 것은 모두를 버려야 가능하다. 그러나 천하를 훔치면 온갖 중생을 윤회에서 건진다. 너는 어떤 것을 훔칠 테냐?”

 

어린 황벽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하를 훔치겠다고 했다.

 

그 뒤로 황벽은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다른 아이들에게 주거나 내다버렸다. 이를 본 어머니가 아들을 다시 앞에 앉혔다.

 

“버리는 데도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물건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육친을 버리고 출가 수행하는 것이다. 셋째는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육친을 버리고 출가 수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탐욕을 버리는 것에 비한다면 출가 수행은 쉽고도 쉬운 일이다. 너는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버리겠느냐?”

 

한참을 생각하던 황벽은 탐욕을 버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곧장 출가해 황벽산을 거쳐 천태산의 백장선사 문하에 들어갔다.

 

1500리 길 찾아가 얼굴도 못 보고 편지 한 통

 

어느 날 사씨가 황벽을 찾아갔다. 1500리 길을 두 달이나 걷고 또 걸어서 외아들을 보겠노라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황벽은 어머니를 만나주지 않았다. 결국 두 달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편지 한 통만을 남기고 떠났다.

 

내가 그 먼 길을 걸어 황벽 스님을 찾아온 것은 스님을 데려가거나 마음을 흐트러트리려 함이 아니었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출가를 권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어미의 마음이 이토록 간절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부디 열심히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스님이 집을 떠날 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깨달음은 가까울 것이다. 어미가 자식을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화두를 챙긴다면 어찌 깨달음이 달아날 수 있겠는가.

 

승가의 규율만 생각하거나 승가의 스님만을 선지식으로 여긴 채 큰 바다와 같은 어머니의 마음을 간과했던 황벽에게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은 날 선 검이 되어 그의 겉치레를 싹둑 날려버렸다. 황벽이 드디어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큰 깨달음을 얻는 계기가 된 것이다.

 

부처님을 낳아준 마야 부인과 키워준 어머니, 예수님을 낳아준 성모 마리아가 없었다면 그분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들에게도 그들을 낳아 사랑으로 기른 어머니가 있었다.

 

그렇듯이 부처님과 하느님에게 귀의한 순례단 한 분 한 분에게도 또 다른 관세음보살님과 성모님이 신장과 수호천사처럼 그들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차창을 바라보는 한 순례자의 눈동자 위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때론 자비의 눈물과 한결같은 정성으로, 때론 지혜의 칼로 화현하는 우리들의 어머니였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관련 기사>

 미물도 ‘자식’처럼, 어머니 ‘정성’이 바로 종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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